매일신문

사설-경영 실패책임 시장에 맡겨야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은 그 손실액을 마땅히 배상해야 한다는 수원지법의 판결은 그동안 모호했던 기업 경영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기업의 의사결정과 지배 구조는 물론 우리 경제 풍토 전반에 걸친 혁명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수원지법 민사7부(재판장 김창석)는 27일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이 이건희 회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진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 소송에서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이사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며 "삼성전자 임원 9명은 902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핫바지' 기능에 쐐기를 박았다. 특히 기업의 고유 기능인 회사 인수결정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에 따라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해 이뤄졌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며 경영진의 판단 잘못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물었으며 계열사 주식 헐값 매도에 대해서도 "그룹 전체차원에서는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들은 회사 주주들의 권익을 위해 이익을 추구했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기업의 독단적 행위에 대한 엄중한 질책이다.

또 "이건희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주기 위해 삼성전자에서 조성한 75억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은 정치자금도 경제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대해 업계에서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강경식 전 재경원장관 예에서 보듯 정책실패의 책임을 법으로 물을 수 없는 것처럼 기업경영의 책임도 법으로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하이닉스 문제 등 빅딜의 실패도 법률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등 끝없이 법리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이사회의 지위는 향상되어야 하지만 경영의 무한 책임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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