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각으로 말들이 많다. 야당에서는 개각에서 참신한 인재는 드물고, 석양의 건맨이 돌아온 것을 비난하고 있다. 여당 안에서조차 개각 내용에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개각이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개각인데다가최근의 연이은 권력형 부정 사건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참신한 인물의 기용을 기대하던 분위기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인선 내용은 쇄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번 개각의 내용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그 문제라면 경향 각지의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충분히 성토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나치게 잦은 개각이다. 장관의 업무가 워낙 복잡하고 중차대하니만큼 업무 파악에만도 1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장관 바꾸기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니 정부 시책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심한 경우이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김대중 정권 들어서 벌써 일곱번째 장관을 맞이하고 있으니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8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고서야 어찌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 교육인적자원부를 방문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역대 장관들의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은 내각제를 하고 있으니 우리와 비교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제를 하는 미국을 보면 장관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중간에 스캔들이나 건강상의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장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단명 장관이란 이상한 현상은 해방후 우리 나라의 정치관행으로 정착된 느낌을 준다. 이런 관행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민심 수습용이다. 장관이 높은 관직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한 탓에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장관도 힘이 없고, 이리 저리 대통령 눈치를 본다.
결국 모든 중요한 결정권은 대통령 한 사람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만일 정책이 효과가 좋지 않다면 장관이라는 희생양을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잦은 개각의 두번째이유는 논공행상이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 음양으로 도와준 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들에게 빚을 갚겠다는 생각이 이런 잘못된관행을 불러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이다.
잦은 개각을 하는 셋째 이유를 찾자면 우리 나라의 오랜 정치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명신 이율곡은 48세의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마흔 개가 넘는 관직을 가졌다고 하니 관직 한 개의 평균이 1년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전통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을 더러운 이름으로 장식했던 이완용에까지 이어져서 그 역시 수십 개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조에는 장관뿐만 아니라 주요 관직이 모두 임기가 짧았다.
다산 정약용은 서울에서 부임해 내려오는 고을 수령은흐르는 물이요, 그 밑에서 일하는 아전은 돌이니, 물이 아무리 흘러도 돌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다. 결국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잠시 왔다 가는 길손에 불과하고, 행정 실태를 잘 파악해서 지배하는 것은 직업공무원이란 뜻이다. 옛날에야 전문성보다는 교양 있는 독서인 위주로 관리를 선발하였지만 행정 자체가 단순하였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었지만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다르다.
자주 바뀌는 장관에게서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하물며 어찌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관은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근본적 개혁을 착수하기보다는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장관 자리 보전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결국 잦은 인사가 빚은 난맥상이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편중 인사를 비판해왔지만 그 못지 않게 잘못된 것이 잦은 인사이다. 그러니 부디 다음 대통령은 장관을 믿고 오래 맡겨서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기를 바란다. 옛말에도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하지 않았던가.
이정우 경북대교수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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