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교 등급제 논란

연.고대, 서강대, 이화여대가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종로학원의 '1학기 수시모집 지원전략 자료'가 일부 언론에 공개되면서 고교 등급제의 실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방이나 평준화 지역 일반계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과 무관하게 입시에서 차별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하면서 진위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종로학원 자료는 이들 대학이 자체적으로 전국 고교를 5개 등급으로 분류, 수시모집 전형에서 반영한다는 것. A급 고교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비평준화 지역 최우수고가 포함되며 비평준화 지역 우수 고교와 서울대 진학생이 15명 이상인 우수 고교는 B급.

평준화 지역 일반 고교는 C급, 하위 고교는 D급, 실업계 고교는 E급이다. 때문에 고교 등급에 따라 대학별로 수시모집에서 합격 가능한 내신 성적 비율도 달라지므로 이에 맞춰 지원하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해당 대학들은 일제히 부인하고 나섰으며 대다수 고교 교사들도 그동안의 수시모집 합격자 분포에 비춰볼 때 맞지 않는 자료라며 그다지 신뢰를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또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통계 수치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대학들이 최종 사정 단계에서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입시 반영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상당수 대학이 최근 수년간 전국 고교별 합격자 수, 합격생들의학점이나 수업 성실도 등을 평가.분석해온 점은 분명하다는 게 입시계의 진단"이라고 했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판가름나는 입시에서 선배들의 성적이나 대학 생활 등으로 인해 적잖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만저만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고교 등급제가 수차례 문제됐음에도 교육당국과 대학들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입시 관계자들은 "현행 평준화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개선하고 대학들도 전형 결과를 공개하는 등 수험생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등급제 주장 납득할 수 없다.

종로학원의 이번 발표는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던 고교 등급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잃을 게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학원측의 자료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평준화 지역 일반계 고교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자료의 공신력이다. 학교 현장과 수시모집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유니드림 사이트에서 수만명을 상담하고 지도해온 결과를 아무리 놓고 봐도 종로학원이 제기한 등급제 적용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

평준화 지역 일반계 고교에서도 3%대에서 합격한 예는 너무 흔하게 제시될 수 있으며, 그 이하에서 합격한 예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 학생이 유리한 측면은 고교 등급제라기보다는 논술이나 학업적성평가, 심층면접의 변별력일 수 있다.등급제 잣대의 획일성도 문제다.

평준화 지역에서도 해당 고교의 성적 변화가 해마다 다른데 5등급이라는 기준의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만약 대학측이 이런 무성의하고 허무맹랑한 5등급으로 전국의 고교를 나눈다면 오히려 등급제가 원래 의도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고교 등급제 실시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지필고사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고 지역마다 학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대학의 입장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촉발된 논의의 핵심은 특목고 학생을 비롯해 누구라도 승복할 수 있는 입시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들도 입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험생 누구든 납득할 수 있도록 전형 결과를 발표하는 분위기를만들어가야 한다.

모쪼록 이번 발표로 인해 전국의 평준화 고교나 시골의 고교에서 수시모집에 적극성을 잃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수시모집이 바람직한 입시제도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임근수 충주여고 교사.유니드림 운영자

▨등급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1학기 수시모집 지원전략 자료'에서 고교 등급제 적용 사실을 공개했다는 종로학원측에 확인한 결과 진의가 상당 부분 왜곡되고 침소봉대됐다고해명했다. 고교 등급제 적용의 의심을 받고 있는 대학들도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발표 자체가 지니는 함의와 그 파장은 엄청나다. 만약 사실이라면 고교평준화 틀 자체를 부인하는 셈이 된다. 또한 각종 교원 단체나 학부모 단체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고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부 특목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실적인 학력 격차를 인정하는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수험생들, 특히 상대적으로 정보의 부족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지방 수험생들은 답답하다.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정말로'고교 등급제'를 적용하는가? 최근 1, 2년 간 수시모집을 지켜 본 입시 전문가들은 물증은 없지만 일부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다는 심증을 아주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로학원에서 발표한 것과는 다소 다르게 대학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등급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수능이라는 한번의 시험을 위주로 수험생의 당락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성적 부풀리기 등으로 인해 고교 단위의 내신성적도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대학들로서는 심층면접이나 지필고사형 면접처럼 가능한 한 다양한 잣대를 적용하려 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고교별로 지난 수년 동안 어떤 입시 결과를 내왔고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는 점도 나름의 사정 기준이 되는 것이다.

기왕 문제가 됐다면 교육 당국과 대학은 고교 등급제 적용에 대한 사실 유무와 그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런 사실 없다"는 식의 답변 만으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과 불안감을 완전히 씻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등급제 논의와는 별도로 일선 고교들은 앞으로 주요 전형 방법으로 유지될 수시모집에 대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미 학교 추천서의 신뢰도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들은 자교의 학력 수준이나 다른 학교와 차별화할 수 있는 사항들을 분명히 하고 대학들에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준비와 노력을 아울러 해야 할 것이다.

윤일현 일신학원 진학지도실장

▨교육당국과 대학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최근 몇해 사이 수시모집에서 일부 대학이 소위 말하는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왔다. 의혹을 받고 있는 대학에 질의를해보면 한결 같이 그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입시 결과를 분석해 보면 그런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종로학원에서 발표한 '1학기 수시모집 지원전략 자료'와 관련된 보도를 접하면서 일선에서 진학지도를 담당하고 하고 있는 실무자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만약 이 발표가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교육 당국은 분명하게 그 실태를 조사하여 전국 모든 고교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그리고 고교 평준화의 기본 틀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최근 다양한 전형 방법이 도입되면서 지방 학생들은 언제나 정보의 부족을 느끼며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고교 등급제가 적용되고 있다면 지방 학생들 대부분이 들러리를 서는 것밖에 안 된다. 특목고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교생들은 평준화의 틀 속에서 학교 선택권 없이 교육청이 배정해 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선배의 진학 성과가 후배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교육 당국과 의혹을 받고 있는 대학들은 이 불합리와 모순에 대해 수험생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그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적용을 하든 안 하든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공개적으로 적용되는 잣대라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용의가 있고 또 수용해 왔다.

일선 학교 교사들과 수험생들은 아무 예고 없는 고교 등급제의 적용을 반대한다. 현재로서 우리는 고교 등급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에서 학생들을수시모집에 지원시키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막연히 불안하게 하거나 까닭도 없이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1학기 수시모집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각 대학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박해문 대구진학지도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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