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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장석수 고택 보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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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삼덕동 주택가.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낡은 대문을 들어서니, 일제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 추상화의 1세대 작가로 활동했던 장석수(1921~1976·영남대교수)화백이 1947년부터 타계할때 까지 살던 집이다.

널직한 마루에는 장화백의 작품이 여럿 걸려 있고, 그 한쪽에는 장화백이 쓰던 물건들이 가득 놓여 있다. 장화백은 생전에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한 화가가 열정을 불태워온 아뜰리에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셈이다. 나즈막한 천장에 자그마한 일본식 방에는 장화백의 유작 80여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림을 그릴때 쓰던 물감, 나이프, 붓은 물론 심지어 그가 즐겨 피우던 파이프, 외출할때 쓰던 베레모 등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가 50년전 지팡이를 깎아 만들었다는 먼지덮인 장기알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희귀자료도 수십점이 넘었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1958∼60년 '제2~4회 현대작가전(덕수궁미술관)'의 팸플릿에는 그와 김흥수 이응로 정점식 하인두 박수근 최영림 등의 이름이 함께 올라있었다. 1957년 신명여고 개교 50주년 미술전 팸플릿, 54년 1회 개인전(대구 미공보원화랑), 55년 2회 개인전(서울 동화화랑)의 사진 등 흥미로운 자료가 많았다.

과연 이런 곳이 어디 있겠는가. 타계한지 25년이 흘렀지만 한 작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그곳에 살고 있는 장화백의 차남 상기(54·안심여중 교사)씨는 "유품을 꼭 보존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버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지역 미술계에서는 장화백의 집을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김태수 맥향화랑 대표는"대구에 몇곳 남아 있지 않은 일제시대 고가에 뛰어난 예술가의 유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자체가 경이롭다"면서 "시민들의 문화마인드를 넓혀주는 문화재로 적극 활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2년 건축할때 있던 정원 자리에 창고 두채가 서 있을뿐, 집안 구조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약간만 개조해도 고풍스런 분위기에 어울리게 아늑한 전시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화백의 가족들은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되는 방안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유작을 전시하고 시민들에게 보여주는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30일부터 10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대구아트엑스포2002' 대구미술 3인회고전에 참가한 장화백은 50년대 후반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이었던 앵포르멜(비정형)운동에 참가한 선구자였다.

미술평론가 김영동씨는 "그는 비록 지방에서 작품활동을 했지만,60년대 후반까지 격렬한 태도로 한국추상 미술을 개척하고 토대를 닦은 작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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