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늘의 포커스-장상 총리서리 인사청문회

29일 열린 장상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첫날 특위위원들은 △장 서리 장남의 국적 및 장남 건강보험 혜택 경위 △부동산 투기의혹 △미 영주권 보유 △학력표기 시비 △국정수행 능력 △대북관 등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박승국) 총리서리제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리제에 대해 국회를 중심으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리제는 오랜 헌법적 관행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국회에서 진지한 협의를 통해 여러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바람직한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박승국)북의 서해도발사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이번 서해교전은 북한의 의도된 무력도발로서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전적으로 북한당국에 책임이 있다.

-(박)햇볕정책은 현재대로 진행돼야 하나. 어떻게 평가하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화해협력 정책은 현재대로 진행돼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군사적으로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대남 도발 의지를 약화시켜 나가는 동시에 남북한 실질협력 관계 증진을 통해 안보위협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김용균)헌법 86조에 보면 총리는 국회동의를 얻어 총리에 임명한다고 한다. 총리만은 대통령이 국회와 의논해 임명해라는 뜻이다. 이제 위헌논란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애매한 정치논리 배제하고 헌법·법률 충실히 지킬 용의가 있나.

▲있다.

-(김용균)총리를 한다는데 학력은 중요치 않다. 인품, 덕성, 경륜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대와 서울에 있는대학은 차이가 있다. 프린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나왔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이 문제는 당혹스럽다. 항상 사석에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라고 정정했다. 기자들에게도 많이 정정했다.

- 이화여대 인문대학장과 총장, 국무총리로 지명되는데는 예일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을 나왔다는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프린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은 각기 그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은 프린스턴대가아니라고 해서 컴플렉스를 갖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학교다.(전용학 의원)

-이희호 여사로부터 구체적으로 총리직이라는 얘기는 안했어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총리로 임명된 것이 이대 선후배 관계인 이 여사가 추천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자 YWCA에서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대학선배로 알고 지냈다고 발언했다. 20대부터 40년간 알고 지낸 것 아닌가.

▲알고 지낸 것은 사실이다. 대학때 이 여사가 총무할 때 만났다는 것이지 여사님을 보는 것은 그 이후 쉬운 일은 아니었고 공적으로는 알았지만 사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의 정부 들어 공직에 진출한 이대 출신 공직자가 이우정 전 여성특위위원장과 신낙균 한명숙 장관 등 적지 않다. 이대가 친분과 '사랑의 친구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다.

▲저도 이화 출신들이 사회에 많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 고운 눈초리로 보지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60년대까지 이화대학은 독점같은 여성교육기관으로 배출 인력이 14만이 넘는다.

-98년 설립된 '사랑의 친구들' 이사가 초대 이사 17명이다. 이 중 장 지명자를 포함 9분이 국민의 정부 요직에 기용됐다.

▲지금와서 보니까 그러네요. 사랑의 친구들의 이사 고문 등은 한국의 인사를 총망라하듯 광범위하다. 저는 바빠서세번 정도밖에 못 나갔다.

- (박승국) 학력 오기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으며 시정하려는 조치는 왜 안했나.

▲그간 많은 분들이 프린스턴 대학교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 동일한 학교인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고 그 때마다 두 학교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언론사 등에 배포된 인명록 자료가 담당 직원의 번역실수로 잘못기재됐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한나라당 이병석) 지난 98년 12월 경기도 양주군 일대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어떤 연고로, 누구의 소개로, 어떤 목적으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한 것인가.

▲양주군에 특별한 연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나 봉사활동을 위해 양주군 장흥면에 있는 광명보육원에 여러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기에 매입토지 인근이 친숙한 편이었다.

해당 토지매입은 동료교수들이 노후에 함께 봉사할 구상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논의하게 된 것이며 매입자금은 은행에서 일부를 융자하여 조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복지법인의 설립은이 분야에 경험이 많았던 박종철 교수께서 일임하여 추진했는데 박 교수가 양주군청, 경기도청 등 행정관청과 협의를 하는과정에 공탁금 문제가 제기돼 추진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병석) 어떤 경로로 장남의 한국국적을 포기했는지, 서약서는 제출했는지 밝혀달라.

▲당시 '국적정리 서약서'에는 '귀국 후 2개월내에 국적을 정리하지 못하면 어떠한 조치를 받아도 이의 없도록' 서약하게 돼 있어 서약서 외에 관련규정이나 내부지침을 별도로 설명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강제조항으로 이해했다. 이에 따라 한쪽 국적을 포기해야 되는 줄 알고 미국 시민권자인 장남의 미국 국적 포기의사를 밝히려고 미 대사관을 찾아갔다.

-(한나라당 이주영) 주민등록 등재를 이유로 '외국인'에게 필요한 별도의 절차없이 국민건강보험 등 각종 수혜를받아왔는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을 요구한 적이 있나.

▲남편이 장남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한 경위는 친자관계여서 당연히 자격요건에 해당한 것으로 믿고 별다른 생각없이 피부양자에 편입시킨 것이다. 당시에는 이것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점을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달리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

-(한나라당 박종희)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와 최초로 만나게 된 것을 6하원칙에 따라 답변해달라.

▲김 대통령과 이 여사와 언제 처음 만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으나 맨처음 이 여사를 뵙게 된 것은 60년대 초 제가 대학에 다닐 때 YWCA모임에서 뵌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이 여사는 YWCA총무이셨고 본인은 YWCA 이대 총무였다. 대학졸업후 98년초까지 김 대통령과 이 여사를 직접 만나 뵌 적은 없다. 98년 이후 본인이 이화여대 총장 재직중에는 여성계모임이나 '사랑의 친구들'이사회 등 공식적인 모임에서 몇차례 뵈었으나 사적인 만남은 없었다.

-(민주당 전용학) 현 시점에서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와 서해교전에 대한 견해, 대북지원 여부는.

▲햇볕정책은 튼튼한 안보의 토대위에 남북한 교류협력의 증인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추진해 나가는 정책으로서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본다. 이번 서해교전은 북한 경비정이 서해 NLL을 침범, 우리 해군 고속정에 기습적 선제공격을 가한 무력도발 행위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제1차 남북국방장관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을 하기로 합의한 사항을 정면 위반한 것이다. 단시간에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게 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민주당 조배숙)대선을 앞두고 중립내각에 대한 중요성이 어느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중립적 내각운영을 위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정부의 엄정한 중립확보를 위해 정부정책을 수립, 추진하고 홍보함에 있어 선심성과 대선과 관련한 오해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선거기간 가까이는 장차관을 비롯, 고위공직자들의 불요불급한 현장 출장을 억제토록 하고 사적인 차원이라도 정치성이 있거나 오해 소지가 있는 자리에는 참석을 자제하겠다.

-(자민련 안대륜)김활란에 대한 평가에 있어 평소 '여성운동가적'측면을 강조한 생각에는 변화가 없나.

▲김활란 박사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비판하되 그 분이 우리 여성의 고등교육 등을 위해 애써오고 공헌한 부분에 대해서는그것대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오는 과오대로 공적은 공적대로 김 박사의 전 생애가 평가돼야 한다고 본다.

-(조배숙)최근 교육의 형평성 문제와 관련해서 기여입학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대학이 자율성을 신장하고 경쟁력을 강화하여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 확보가 긴요하다는 점에서 기여입학제는 부족한 대학재정을 확충하는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의 기여입학제 도입은 계층간 위화감 조성, 대학간 격차의 심화 등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예상된다.

-(이주영)후보자 본인, 배우자, 자녀의 예금계좌 중 상당수의 개설 일자가 2000년 이후인데 그 이유는.

▲주로 은행의 권유에 따라 6개월~1년 기간의 금융상품에 예금을 해왔기 때문에 만기가 자주 돌아오게 되고 그러므로 당시 금리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거나 조건이 좋은 금융기관 또는 상품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런 연고로 2000년 이후에 개설된 예금계좌가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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