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위험천만 통학로-학생·차 뒤범벅 인도인지 차도인지…

대구시내 초등학교 통학로의 36%가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생활실천 시민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시내 전체 187개 초교 중 68개 학교의 통학로가 각종 위험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

대구에서 위험한 곳이 가장 많은 구는 달서구로 18개교에 달했고 △수성구 16개 △동구 15개 △달성군 8개 △북구 6개 △중구 4개 △남구 3개 △서구 2개 등 초등학교도 통학로가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21일 보도)

대구시 수성구 만촌 3동 대청초등학교 앞. 아침 8시, 등교하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인근 주민들의 차가 뒤엉켜 엉망진창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차에 막혀 갈팡질팡, 출근차량들은 아이들에 막혀 우왕좌왕, 마치 피난길의 혼잡을 보는 듯 하다.

'여기서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지만 소용없다. 혼잡을 뚫고 등교해야 하는 아이들과 역시 혼잡을 뚫고 출근해야 하는 인근 주민들의 자동차들에 이 길은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니라 '투쟁의 장'일 뿐이다.

학교 담을 따라 정문까지 130m에 이르는 등굣길은 경사 30。. 이 좁은 길은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 게다가 담을 따라 주차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어 무시로 차들이 들락거린다.

그러니 운전자 입장에서는 찻길이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등굣길이 된다. 조무래기 아이들은 매일 아침 주차된 차와 달려오는 차를 상대로 등교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주위가 산만한데다 한창 장난치기 좋아할 나이인 초등학생들에게는 위험천만. 운전대만 잡으면 성질이 급해지는 운전자들에게도 아찔하기는 마찬가지.

학부모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1천600명의 초등학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가뜩이나 좁은 등굣길엔 인근 혜화여고와 영남공고로 들어가는 등교 승용차들도 복잡함을 더한다. 요리조리 골목길을 돌아 나드는 자동차들로 골목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에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 등교 때와 반대로 내리막이 된 길을 아이들은 뛰어 내려간다. 길가 문방구나 떡볶이 가게에도 눈을 기웃거리고 친구들과 종알대느라 달리는 자동차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는다. 등교시간보다 아이들 숫자가 적으니 차들도 속도를 더 낸다. 지난 10월 초엔 이 학교 어린이 한 명이 경사로를 내려오는 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잇단 교통사고와 안전사고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학부모들은 대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안전 시설물(보도블록과 가드레일) 설치를 요구하는 주민 청원서'. 불과 이틀만에 1천명이 넘는 학부모들이 서명을 해서 관계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나 관할 수성구청은 학부모들과 학교측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산 사정과 인근 주민 반대를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매일 되풀이되는 아이들의 위험과 혼란은 아랑곳없이 내년쯤에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학교 운영위원장 박덕환씨는 "내일도 모레도 아이들은 저 복잡하고 위험한 길을 뚫고 다녀야 합니다.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립니까". 그는 기껏 20여 대의 주차차량과 30여 호 주민의 편의만 생각해 1천6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매일 위험에 노출돼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현재 학교 담을 따라 이어진 주차공간을 없애고 네거리까지 가드레일을 설치해서 인도를 만들면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차 공간은 골목뒤에 충분히 있습니다. 몇 발짝만 걸으면 되죠".

집이 코앞임에도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나온 학모 최모씨는 "소수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을 위험에 방치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구청에서 인근 주민들을 설득하면 이해못할 주민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이 주민 민원과 예산사정을 이유로 아이들의 위험한 등굣길을 방치해두고 있는 곳은 대청 초교 뿐만은 아니다. 수성구의 두산초교, 북구의 대동초교 등 대구시내 68개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오늘도 외줄만큼 위험한 등굣길을 오가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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