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스-2002 베스트셀러 10선

올 한해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삶과 정신의 건강함을 주는 유익한 책이 있는가 하면, 얄팍한 상술과 기교로 독자들에게 어필한 책도 없지 않았다.

매일신문 문화부는 독자들의 책 고르는 경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올해의 베스트셀러를 모아봤다.

◆세계화와 그불만(조지프 스티글리츠/세종연구원)

'세계화(globalization)'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지는 꽤 오래됐다. 내면적으로는 그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게 우리의 처지다. 세계화와 반세계화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는 어느쪽에 귀기울이는게 옳을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미정부와 세계은행 등에서 일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는 세계화의 진행방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세계화가 궁극적으로 인류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고, 적어도 지구촌 곳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곤경을 누그러 뜨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화를 맨 앞에서 이끄는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WTO(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들의 정책실패와 오만, 국제기구 뒤에 숨어있는 권력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오도된 방향으로 세계화가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화를 이끄는 주요기구들이 고통받는 국가를 오히려 실패로 몰고간 수많은 방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태국은 IMF의 처방을 완벽하게 따라가다 경기회복에 실패한 반면, 한국은 IMF 충고를 절반만 따라해 경제회복에 성공했다고 봤다.

세계화와 미래의 세계경제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적잖은 찬사를 받은 책이다.

◆혼자만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현암사)

한 부자가 늙고 초라한 어부를 만났다. 어부의 느릿느릿한 그물 작업을 바라보던 부자가 한심해 물었다. "그렇게 천천히 일해서 언제 여유있는 삶을 누리겠소?"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여유롭나요?". "젊을때부터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돈이 될만한 곳에 투자하고, 지금도 매일 돈을 굴리면서 더 많은 여유를 찾고 있지". 어부가 답했다. "당신은 지금 제가 바빠 보이나요?".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초탈한 사람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척 단순하다. "말이야 옳지만…"하고 거부감으로 항변하는 데는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질투어린 시샘 때문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한 70대 농사꾼이 질그릇처럼 투박한 방식으로 세상사람들에 툭 던지는 세상사는 이야기다.

돈 좀 있다고 마구마구 써대는 졸부들과 그들을 닮지 못해 안달하며 불행한 삶을 자초하는, '배 터지게 먹고 돈 주면서까지 살 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 보내는 일갈이다. 자연이 있어서 내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기심과 질투, 낭비와 욕망을 내뿜는 인간들은 지구라는 혹성에서 암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저 혼자만 알고 사는 삶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

저자 전우익은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 남짓 수형행활을 했다. 출소 이후 이제까지 줄곧 고향인 봉화 구천마을에서 홀로 농사짓고 나무 기르며 살고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웅진출판)

소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저자의 유년에 대한 기억이다. 책이 세상에 선보이고 저자도 10살의 나이를 더 먹었다.

그러나 '그 많던 싱아는…'가 여전히 유년의 원형과 생기를 간직한 것은 소설가의 자전(自傳)은 자연 '소설스러울' 법하리란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탓이다.개성에서 이십리길에 떨어진 '박적골'이란 저자의 고향이 무대다. 양반고집을 지켰던 조부, 과부의 처지로 자식들을 끌고 서울살이를 한 억척스런 엄마, 사회주의에 물들었다 6·25때 세상을 버린 오빠 등이 유년의 등장인물이다.

엄마등에 업혀 다니던 다섯살 무렵, 사물이 사무치도록 슬퍼 보이는 '각도'가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는데, 우리의 유년에도 그런 각도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았을까.

◆ 아홉살 인생 (위기철/청년사)

위기철은 1980년대 중반부터 진보성향 잡지에 콩트, 칼럼을 써왔다. '철학은 내 친구' '반갑다, 논리야' 등 주로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써 왔으며, '아홉살 인생'은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아홉은 정말 묘한 숫자이다. 아홉을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 아홉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꼭 서른 살이 되는 해(1991년)에 이 책을 펴낸 저자는 삼십대가 되는 기분은 정말 더럽고 징그럽고 우울하고 분통하다고 푸념한다.

책은 비단 아홉살짜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개 끔찍한 현실보다 찬란한 욕망을 더 사랑하건만 어차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어른의 감상을 아홉살짜리 눈에 비쳐놓았다.

◆ 단순하게 살아라(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로타르J·자이베르트 지음/김영사)단순하게 사는 것은 쉽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사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

이 책은 삶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조정하는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물건을 단순화시키고, 재정상태를 단순화시키고, 시간을 단순화시키고, 건강을 단순화시키고, 자신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간을 단순화하려면 같은 일을 두번 하지 말고, 삶을 완벽하게 만들지 말 것을 권한다 그에 따른 구체적 방법을 전한다.

저자가 빌어온 장자의 말씀대로 "쉬운 것이 올바른 것이며, 올바르게 시작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단순한 삶이 의미있는 삶이다.

◆삼국유사(고운기 지음·전2권·현암사 펴냄)

국문학박사 고운기씨가 재해석한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서출판의 통례를 깬 독특한 책이다. 원문이 해설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했으며 항목과 각 장의 제목도 저자 특유의 감각과 편의대로 달았다.

'내가 만일 삼국사기를 썼더라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이란 식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대비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했으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사실(史實)에 대한 다양한 부대설명을 덧붙여 역사서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이 삼국유사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은 풍부한 사진에 있다. 남한 곳곳에 숨겨져 있던 역사의 현장을 답사해 담은 사진들이 문화재현장의 보존 당위성까지 일깨워준다. 고구려의 옛 모습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야생초 편지(황대권 글·그림. 도서출판 도솔)

이해인 수녀(시인)는 '야생초 편지'를 '들풀 향기 가득한 생명의 고백서'라고 했다. 감옥에서 야생초를 정성껏 가꾸며 얻은 야생초 체험담과 삶의 이야기에 초록빛 들풀 향기가 은근하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대한 편지글 형식의 이 야생초 관찰일기는 풀 향기 가득한 식물일기이자 생명일기이다. 감옥에서도 자유로운 구도자의 사색일기·수련일기이다. 저자가 '옥중동지'로 삼고 감옥을 살며 그린 생생한 야생초 그림에도 해맑은 풀내음이 흠뻑 배어있다.

저자 황대권(47)은 서울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 동안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냈다.

◆뇌(베르나르 베르베르/열린책들)

'개미'로 유명한 베르베르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특유의 이원적 줄거리를 구사하면서 인간 머릿속의 작은 우주-뇌의 세계를 기묘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컴퓨터를 꺾고 체스세계챔피언에 오른 저명한 의학자가 목숨을 잃자, 탐정과 여기자가 수사를 시작하는데서 시작된다. 추리적인 기법을 통해 끝까지 독자를 몰입시키는 전개과정이 흥미롭고, 자칫 추상적이 될수 있는 주제의식을 구체성있는 글솜씨로 보여준다.

스토리는 인간을 움직이는 궁극적 동기 열한가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깊숙하게 파고든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잔잔한 재미가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는 책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친구미디어)

'남자와 여자는 엄연하게 다르다'는 상식적인 화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펴나간다. 흔히 부부간에 갈라설때면 '성격 차이로…'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남녀의 성격이란 원래 다른 법이 아닌가.

이 책은 생활주변의 사례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게 강점. 남녀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협조가 필요하고 자존심과 인간적 존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 미국적인 사례가 나열돼 있는게 흠이지만, '사랑학 교과서'로는 손색이 없다

◆화(틱낫한/명진출판)

나는 늘 웃고 있는 편인가? 이 질문부터 시작된다. 마음속에서 화를 해독하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저자(베트남출신 승려)의 처방은 '화가 났을때 무엇보다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내마음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상황을 파악해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상대방이 내게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와 내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 헤야려야 한다는 것.

화를 다스리기 위해 유용한 '도구'들을 대거 내놓는 것도 재미있다. 의식적인 호흡, 의식적으로 걷기, 화를 끌어안기, 그와 나의 내면과 대화하기 등….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한 갖가지 실용적인 방법이 제시돼 흥미롭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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