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5일제 좋긴 좋은데..."

은행원들이 토요일 휴무를 시작한 지 6개월 됐다.

그런 가운데 외국계 기업 등에서도 점차 주 5일 근무가 일반화돼 가고 있다.

대구지방노동청이 파악하고 있는 대구시내 주5일 근무자는 은행.증권사 종사자 1만명, 대학 교직원 1천명, 민간 기업체 근로자 1천100명 등 1만2천여명에 이른다.

주5일 근무는 과연 어떤 변화를 몰고 왔을까?

◇좋습니다=외국계 기업 입사 8년차인 박근용(35.달성 가창) 팀장은 회사가 4년 전부터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뒤 한달에 한번꼴로 금요일 밤 가족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부인.딸(3)과 함께 1박2일 여정에 나서는 것. 여행 가지 않는 토요일에는 부인과 함께 운동하거나 육아.가사를 대신 맡아준다.

박 팀장은 "토요일을 쉬게 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늘면서 생활에 활력을 갖게 됐다"며 "가정이 화목해지니 직장 일의 능률도 더 높아졌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농협중앙회 유준열(41.도원동) 과장은 요즘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오전에는 직장동료 30여명과 함께 영남이공대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자녀들이 하교하는 오후에는 가족이 함께 팔공산 동봉으로 산행을 가는 것. 유 과장은 "토요일 오후 늦게 직장일을 마치던 예전에는 꿈도 못꾸던 일"이라며 "작년 7월 주5일 근무제로 바뀐 뒤 여유가 생겨 직장 동료들이나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은행원 박미향(37.여.감삼동) 대리는 주5일 근무 뒤 '월요병'이 사라졌다고 했다.

전에는 빨래.청소 등 집안 일을 미뤘다가 일요일에 몰아 하는 바람에 일 스트레스가 다음날 출근 이후까지 이어졌고, 남편이 일요일이라고 아이들과 놀러나가도 자신은 함께 갈 수 없어 처지를 비관한 적도 적잖았다는 것. 박 대리는 "지금은 토요일 오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일요일엔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증권사 배수호(31.복현동) 대리는 작년 11월부터 토요일엔 대구YMCA 회관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교육받고 있다는 것. 배 대리는 "대학시절 레크리에이션 동아리에서 익힌 실력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수강하기 시작했다"며, "토요일을 자기 계발의 날로 삼아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컴퓨터.어학 등을 배우는 직장 동료들이 많다"고 했다.

◇오히려 고민을 떠안은 사람들=그러나 주5일 근무제 이후 오히려 고민에 빠진 사람들도 적잖다.

농협중앙회 박인수(41.만촌동) 과장은 "남들은 토요일을 쉬게 됐다고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내게는 고민만 쌓인다"고 했다.

운동도 귀찮고 해서 토요일 오전을 내내 잠으로 보냈더니 한달만에 가족들이 성화하기 시작하더라는 것. 그래서 그 후엔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놀이동산.외식 등으로 나돌게 돼 씀씀이만 오히려 커졌다고 했다.

박 과장은 "하루를 쉬게 되면서 연봉도 깎였는데 지출은 더 많이 해야 하니 토요일이 괴롭다"며 "아내도 가사일과 생활비 지출이 늘었다며 요즘은 싫어하는 눈치"라고 했다.

박 과장이 뒤늦게 찾은 돌파구는 도서관행. 얼마 전부터는 토요일 아침 일찍 등산을 갔다가 곧장 인근 도서관으로 직행해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 서미연(43.여.범물동)씨는 "토요일을 쉴 수 있다는 즐거움보다는 갈수록 지출 증가 걱정이 커진다"고 했다.

학교 수업까지 주 5일제로 바뀌면 아이들까지 체험학습이다 해서 외출이 잦아지게 될텐데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이라는 것.

대학 교직원 최정수(54.산격동)씨는 주 5일 근무 이후 매주 토요일 산을 찾는 등산 애호가로 변했다고 했다.

남들은 안쉬는 토요일에 집에만 있기도 뭣하고 또 뭘 할지 고민하기도 싫어 무작정 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전문가 의견=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주 5일 근무제 이후 뭘 할지 고민에 빠지거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도 적잖다고 했다.

자유시간을 꿈꾸던 여성 근로자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가사 노동에 힘들어하고, 남성들 역시 증가하는 지출과 외출 피로로 고통을 하소연한다는 것.

강 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가생활을 단순히 먹고 마시고 쇼핑하거나 차 몰고 멀리 가 돈을 쓰고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 5일 근무제에 잘 적응하려면 부부.가족이 함께 즐길 취미.운동 등 여가 문화를 개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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