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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이민 100년의 숨결-영남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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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 여성사에서 '영남부인회'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예비신랑의 사진을 한 장 달랑 들고 제2의 하와이 이민물결을 이룬 사진신부 중 새 삶을 개척하려는 모험심이 강했던 부산과 대구, 밀양, 안동 등 영남지역 여성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당시 부산항에서 이민 연락선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경상도 여자들은 대한부인구제회가 유력 항일단체인 국민회와 동지회파로 갈려 분열상을 보이자 탈퇴, 1928년 9월27일 최초의 지방조직인 영남부인회를 결성한다.

1912년 18세 때 6세 연상의 안동 출신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권도인에게 시집간 대구 출신 이혜경과 김보배 박금우 곽명숙 박정숙 이양순 전응용 박정금 정순이 김봉순 서복수 등이 회장을 맡았다.

150여명으로 이뤄진 이 단체는 즉시 여성상의회 성격의 영남부인실업동맹회로 이름을 바꿔 독립운동 후원 이외에 다른 방법의 애국·애족활동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돌아갈 나라마저 잃어 힘겹고 고달팠던 이민사회에 큰 힘을 보탰다.

저축장려와 국산품 수입을 통한 고국 실업발전, 동포간 사교와 친목증진, 회원 상부상조 및 안녕보장 등에 주력하며 활발한 사회·경제활동을 벌였던 것.

영남 여성들은 먹을거리를 만들어 팔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손의 허물이 벗겨지고 허리가 부서져라 일했다.

이들은 이미 1913년부터 한복을 개량해 입었고 마약사용 금지, 신학문과 영어교육 등에 힘쓸 것을 강조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도 보였다.

영남부인회는 여성들이 곗돈으로 집과 가게를 마련하고, 하숙을 치거나 부동산에 투자해 경제안정을 확보토록 노력해 1940년 10월 발족, 지금까지 이어지는 하와이 유력단체인 한인상의회의 효시가 됐다.

영남부인회는 1941년 태평양전쟁시 미군이 세탁계약을 추진할 때 한인들이 세탁업에 본격 진출하도록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강병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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