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재판과 직업병

판사에게도 직업병이 있다.

모든 판결을 컴퓨터로 작성하다보니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팔목이 결리고 뒷목과 어깨까지 뻐근해진다.

모니터에서 많이 나온다는 전자파나 법전의 깨알같은 작은 글씨 때문에 나이에 앞서 기억력이 줄어들고 눈이 침침해졌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나에게만 국한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의식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되어버렸다.

애들이 서울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맨먼저 한 말은 안된다는 말이었고, 수학학원에 다니겠다고 할 때도 안된다는 말부터 하였다.

하다못해, 벽에 못을 박거나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녹여야 할 일이 생겼어도, 이런 저런 이유를 달고 안되겠다는 말부터 먼저 나오고 말았다.

주위에서는 성격이나 의식구조가 원래부터 소극적이라서 그런 것이지 직업과는 관련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재판과 판결로 얻은 직업병이라고 우기고 있다.

재판, 특히 민사 재판의 판결은 당사자가 주장하는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사법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판사는 만일 당사자가 법이 정해 놓은 여러 가지의 요건중의 하나를 채우지 못하였다면 설사 다른 요건은 법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의 요건이 미비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요건중에 혹시 뭔가를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고, 거기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면 다른 요건을 심리하기 전에 미리 안된다고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안되는 쪽을 미리 가려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직업적인 버릇이 계속 쌓여서 마침내 일상생활에서까지도 소극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재판을 판결로 끝내게 되면, 대개의 경우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인 두 가지의 결론밖에 얻을 수가 없다.

당사자는 이로써 승자와 패자로 확연히 나누어지고, 패자 중에서도 특히 많은 요건중에 어느 하나만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당사자로서는 다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평가해주지 않는 판결에 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거기다가,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함에 따라, 그로부터 발생하는 법률분쟁도 일도양단적인 결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재판도 판결에 의한 권리관계의 확정 외에도 분쟁의 실질적인 해결이라는 점에 또 다른 초점을 맞추어야 하였고, 이에 따라 당사자의 이해와 양보 타협 등을 통한 실질적인 분쟁해결의 길을 마련하여야 하였다.

이것이 조정제도이다.

조정절차에서는, 판사나 조정위원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분쟁의 법률적 쟁점뿐만이 아니라 판결절차에서는 고려하기 어려운 실질적인 이해관계, 감정의 앙금, 분쟁의 이면에 숨은 이익 등을 대화와 설득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상황에 따라 다양한 분쟁해결 방안을 찾아 나서게 된다.

새해부터는 더 많은 사건이 조정으로 마무리 될 전망이다.

나도 직업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일해야 할 것이고, 제발 그것이 버릇으로 쌓여 일상생활까지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신태길(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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