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우연히 자신의 내면과 부딪치는 한 문장이나 단어에 아득히 빨려드는 것처럼 나는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어떤 풍경에 사로 잡혀 그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의미에 한없이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풍경은 그것의 묘사적 언어를 넘어선 의미이고 아름다움이다.
어떤 때는 그 풍경이 좀 더 명확한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원의 안개 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이 어슴푸레하다.
그것은 시와 같이 감상적 체험에 있지 논리적 석명(釋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끔 그런 풍경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덕유산 큰 산줄기의 남쪽 끝을 이루고 있는 현성산 초입에서 만난 미폭(米瀑)은 나를 아득한 시원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풍경은 미폭(米瀑)이란 이름에 담겨져 있는 폭포에서 쌀이 나왔다는 어설픈 전설보다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시간조차 없던 그 시원의 미폭(美瀑)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성산 초입 아스팔트 길가 미폭(米瀑)은
그 옛날에는 깊은 협곡의 미폭(美瀑)이었음을
네가 단군의 자식이었던 기억 보다 더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폭포의 바위벽을 타고 흐르는 가는 물줄기도
그 옛날에는 우렁찬 푸른 폭포수였음을
어느 사랑의 전설 보다 더 슬프게 흐른다
밟으면 바스러지는 능선 길 작은 돌멩이들도
그 옛날에는 푸른 이끼 낀 거대한 바위였음을
사막의 모래보다 더 큰 분노를 안고 바스러진다
산 정상에 내려앉는 흰 눈송이들도
그 옛날에는 히말라야 고봉의 정수리였음을
봉황의 날개 짓보다 더 고고하게 내린다
내리막 발길에 밟히는 부드러운 흙도
그 옛날에는 깊은 물살을 일으키는 심해의 밑바닥 이었음을
지층의 화석보다 더 깊이 새기고 있다
현성산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내리는 회색하늘을 쳐다봤다.
현재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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