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따라 세월따라

초저녁,

새색시 걸음마냥 살금살금 내리던 눈을 보다가

밤새 함박눈이 내리는 꿈을 꿉니다.

목덜미에 다가서던 서늘함,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녹이는 느낌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꿈에서 만납니다.

한밤중,

섬뜩한 차가움에 놀라 눈을 뜨면,

지리한 캄캄함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더딘 시간속에서도 동생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지만

엉덩이 썰매를 탈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아침,

새색시의 살금 걸음이지만 밤을 재촉해 걸어왔는지,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봅니다.

하도 급한 마음에 종자씨 포대를 쏟아버리고

동네앞 언덕배기로 달려갑니다.

벌써 가마니 포대를 들고 줄을 서 있는 부지런한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동생과 같이 온다고 기다린 시간에 심술이 납니다.

소리를 지르며 쏜살같이 내려가는 아이들.

'가마니를 가져올 걸'하고 후회도 해봅니다.

드디어 차례가 왔습니다.

동생을 뒤에 태우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신도 나지만 무섭기도 합니다.

그래도 동생앞에서 차마 무서워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귓불을 때리는 바람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윙윙거리지만

눈만 질끈 감으면 어느 새 종점입니다.

돌부리에 받혀 엉덩이엔 불이 붙지만,

언덕배기에서 더 낮은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마음은 하늘나라를 다 구경한 것 같습니다.

글: 정지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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