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다.
그 새하얀 눈밭을 걸어 한 아이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이른 아침부터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찾을 때에는 대개는 중환자이거나 응급 환자일 경우가 많다.
건강해 보이는 아이가 병원에 온 이유를 물으니 어제 취학 통지서를 받았다고 한다.
매년 이맘 때면 학교를 한 해 늦게 보내려고 진단서를 원하는 부모들이 하루에도 수 명씩 된다.
1월 말까지 증빙서류(의사 진단서)를 마련해서 취학의무 유예 신청서를 작성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유는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작아서', '아직 받침있는 글자는 잘 못써서' '어리숙해 보이는 데다가 나이까지 어리면 왕따를 당한다던데…' 하면서 학교 교육을 따라가기가 힘들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취학통지서의 주의사항에는 '학력아동이 불구.폐질.병약.발육 불완전 또는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취학이 불가능할 시는 유예 또는 면제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취학 유예의 결정은 해당 학교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신체 발육이나 지능 발달이 실제 나이보다 지나치게 늦은 경우 학교 적응이 어려울까봐 취학 유예를 원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단지 '글자와 셈하기를 부모 마음에 들도록 제대로 가르쳐서 보내겠다'는 욕심으로나 또는 '학교에 가서 남한테 기죽지 않고 앞장서는 자세로 학교 생활을 시작하기'를 바라고 취학 시기를 일부러 늦추는 것은 생각해 봐야한다.
우선 다른 친구들은 다들 학교에 가는데 자기만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데서 느끼는 상처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에게는 대단한 설렘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기회를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고 일단 아이를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워서 학교에 보내라고 하고 싶다.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떠나 올때 우리 아이의 담임인 조앤 선생님은 "너는 나에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경외심을 맛보게 해준 아주 특별한 아이"였다며 연신 눈물을 훔치며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처음에 학교에 왔을 때는 영어를 잘 몰라 수심이 가득했는데 하루하루 가르치는 대로 따라와서 이제는 곧잘 자기의사를 표현하기까지 하니 그 가르치는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 또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너무 많이 가르치고 준비시킨 후 입학시킴으로써 자칫 새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시시한 1학년을 맛보게 하기보다는 학교에 가면 '즐거운 곳 , 배울 것이 많은 소중한 곳'이란 것을 우리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교육풍토가 되었으면 …
학교의 선생님은 엄마처럼 따뜻한 존재임을 인식시켜 아이로 하여금 하나 하나 배우는 기쁨을 느끼도록 준비시켜 보자.
정명희 (대구의료원 제1소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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