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오얀 밀가루를 뿌려 놓은듯 영양 일월산 아래 주실마을을 찾던 날은 밤새 내린 눈이 온 동네를 포근히 덮고 있었다.
조선시대 500년 전통이 축적돼온 탓인지 동구밖에서 바라본 주실마을은 흔히 보아오던 다른 마을들과는 분위기부터가 확 달랐다.
주실마을은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경북도기념물 제78호)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히 자리잡고 있었고, 옥천종택 (玉川宗宅·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숱한 시대의 변화에도 아무런 동요없이 어쩌면 문화자원이 이렇게도 잘 보존돼 왔을까 하는 찬탄이 절로 터져나옴직 했다.
행정구역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한 주실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1630년 이전까지 주(朱)씨들이 살았던 마을에는 한양인 조전 선생이 내려와 정착하면서 지명을 매한이라 했고 1700년 부터는 매계 혹은 매곡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주곡으로 변경돼 지금껏 불리고 있다.
이곳 조(趙)씨는 흔히 주실 조씨라 부르는데 선비의 고장 유명세만큼이나 마을 전체 짜임새가 안정된 것은 물론 삼각형 모양의 마을 앞 문필봉(文筆峯)은 많은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진원지답게 형상이 빼어난다.
주실 조씨의 선대는 원래 한양에서 세거를 하다 1519년 기묘사화를 만나 일문들이 팔도로 각각 흩어질때 9세 현감공 종(琮)은 영주로 낙향 했고, 그의 손자 원(源)은 1535년 영양으로 왔다.
원의 아들 경산당 광인과 약산당 광의 형제는 청년기에 이미 도학이 남달라 1577년에는 영산서원(英山書院) 16인 원로에 선발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과 연이은 정유재란에서 약산당은 수월, 사월, 연담, 호은 형제와 의병을 일으켜 곽망우 당의 화왕산성 전투에 참전했고 수월 사월 형제는 정묘·병자호란 때에도 큰공을 세웠다.
이같은 역사를 지닌 주실마을이 본격 개척에 나선 것은 1629년 인조 7년부터 호은공과 아들 진사공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주실에 살면서도 한양으로 돌아갈 뜻을 버리지 않고 있었으나 진사공의 손자인 16세 호봉. 옥천 형제와 임호 임악 형제 등이 1677년부터 대소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이어지면서 주실은 만년 대기를 닦는 계기가 됐다.
1629년부터 1894년 과거제도 폐지때까지 265년간 마을에서 문집과 유고를 남긴 사람이 무려 63인에 달했다.
이때문에 당대 주실마을에는 전국의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과의 교류는 개혁의 불길을 지펴, 제례와 관례, 혼례 등 생활개혁 추진으로 오늘날 주실마을의 개혁전통에 큰 계기가 됐다.
당시 유학을 새롭게 익히던 곳이 월록서당(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이고 호은정사, 만곡정사, 침전정, 학파정도 그러한 뜻을 잇던 곳이었다.
1899년 석농 선생이 서울의 개화운동에 동참하고 1904년부터는 국민교육회와 대한자강회에서의 활약으로 주실은 개화마을로 본격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마을에서는 영진의숙, 배영학당, 동진학교를 세워 노동야학과 여자야학을 일으켜 민족교육에 열성을 쏟았다.
호은종택에 설치된 영진의숙은 어린이들을 가르쳤는데 인석, 근영 부자가 저술한 초경독본(初徑讀本) 교재는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월록서당에 세운 배영학당은 노동야학으로 1927년 조선농민사로부터 전국 모범야학 포상도 받았고 동진학교는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간판을 내걸었지만 딸네와 새댁들이 모여 가사를 짓고 읊으며 안방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1920년대 주실마을은 노동공제회·신간회·청년동맹 등을 결성해 산골마을 답지않게 민족운동에 큰 발자취도 남겼다.
또한 이 마을에서는 1928년부터 음력설을 양력과세로 전환, 지금껏 양력설을 쇠는 전통이 지켜지고 있다.
일본의 창씨개명 강요에도 저항하여 성과 이름을 지켰는데 아마도 온 마을이 창씨개명을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마을에서 많은 국학이 배출된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 수있다.
이 마을이 지닌 전통의 맥은 주민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할만하다.
조호기(44) 이장은"주실마을은 90여 가구 200여 주민이 오순도순 살고있는데 매년 양력설을 지낸 후 1월5일이면 온 동민들이 모여 지신을 밟고 성황당 동제를 올리며 한해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영양군 일월면 전형제(49) 면장은 "주실마을은 전통 유교문화 자원이 잘 보존돼 있고 올해부터는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이 본격화돼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아 고부가가치 산업 마을로 전국에서 각광받을 날도 멀지 않았다"며 큰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여느 전통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노인들만 마을을 지킬 뿐이다.
농한기인 요즘 호은종택에서 200m쯤 떨어진 마을회관에는 매일 할머니 20여명을 포함, 40~50여명의 노인들이 점심을 함께 하며 소일하고 있다.
주민들이 쌀과 돈을 자발적으로 내서 회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외지의 자녀들도 고향에 들릴 때마다 10만~20만원씩을 보태 기금이 남아돈다고. 이때문에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인근 영해읍에서 마을을 드나드는 상인들에게 싱싱한 횟감을 부탁해 회덮밥도 자주 해 먹는다며 할머니들은 자랑했다.
술 마시는 노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하루 한두잔씩 커피를 타 마시기도 하고 스트레칭 체조도 하는 모습이 옛 마을회관 풍경과는 사뭇 달라보인다.
조동욱(70) 할아버지는 "나도 마을회관 출입 노인중엔 젊은층에 속한다"며 "이젠 농사꾼도 노인들 뿐으로 농사를 짓지못해 이웃마을에 맡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춘선(70)할머니도 "주실마을 90여가구 중 새댁이 있는 집은 5가구에 불과해 대부분 나같은 할매들이 밥도 짓고 농사일도 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에 대해 조세락(75) 할아버지는 "관광개발이 전통마을의 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어 군청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업이겠지만 조용하던 농촌마을의 운치가 사라지고 그 좋던 인심들도 나빠질까봐 걱정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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