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비슬산에서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는 주민의 신고를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비슬산에서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잡식 대형동물인 곰도 더 이상 이곳에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동물뿐 아니라 흔히 볼수 있었던 많은 야생 생물종도 시나브로 사라져 가고 있다.
비슬산이 먹이를 구하고 번식·은신하는 서식지로 적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도심 팽창과 개발 등으로 서식 환경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편리냐 환경이냐', '개발이냐 보존이냐'. 비슬산이 도로건설 계획으로 다시 한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산-비슬산-용고개로 이어지는 비슬산 생태축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앞산을 관통하는 길이 7.9㎞, 너비 30m의 상인-범물간 4차순환선 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시는 올해 타당성 조사를 거쳐 환경영향평가를 받을 계획이다.
달성군도 비슬산을 관통, 가창-옥포·논공을 연결하는 길이 6.5㎞, 너비 8m 왕복 2차로 군도 3호선을 계획하고 있다.
교통량 분산에 따른 교통 체증 해소 등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환경 전문가들은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산의 맥과 생태축을 뚫어 도로를 낼 경우 산림 및 생태계가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고 한다.
한 환경 전문가는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천연가스 차량 도입 등 각종 오염 방지 제도를 만들고 특별법까지 제정하는 등 뒤늦게 야단법석을 떨면서 한편으론 수 천억원의 엄청난 예산을 들여 생태계를 파괴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도로 건설 주장의 근거는
행정기관 및 교통·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차량들의 불필요한 도심 진입을 막아 도심의 교통량을 분산하고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선 산을 관통하더라도 외곽 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곽 순환선 도로가 만들어지면 도시 교통량이 분산돼 도심 간선도로 통과 차량이 줄어 도시 내·외곽 통과 차량 모두 시간 및 연료 소모가 줄어드는 등의 경제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 또 평균 주행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이동 거리 및 시간 단축에 따른 이동 편의는 물론 물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적절한 주행 속도와 통행 차량 감소로 도심의 대기오염도 크게 줄일 수 있어 오히려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기혁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너비 50m인 달구벌대로보다 20m 신천대로의 교통량이 더 많은 것처럼 현재 대구 도심 교통 흐름을 볼때 간선도로보다 외곽 도로가 더 중요하다"며 "환경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토의 70~80%가 산지인 우리나라 지형상 도심 외곽도로는 산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대식 영남대 지역개발학과 교수는 "4차 순환선을 이용하는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여 앞산순환도로 체증을 해결하는 등 도심 교통 체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대구시 박대녕 도로과장은 "상인-범물 구간이 연결되지 못하면 4차 순환도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만큼 환경 훼손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 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슬산 관통 군도 건설도 지리적 단절, 군청 이전 등 가창면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교통 분산 및 물류비용 절감을 위해 계획됐다고 한다.
강경덕 달성군 도시국장은 "옥포·논공-가창 간 연결도로가 생기면 대구시내를 거쳐 둘러가지 않아도 돼 도심 교통 체증 해소는 물론 시간 및 연료 단축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가 크다"고 했다.
◆도로보다는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환경 전문가들은 생태축을 관통하는 도로가 건설되면 생태계를 파괴해 결국 인간을 포함한 생명 기반을 서서히 쇠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관통 도로로 인해 산의 수용력이 급감, 산림의 구조·기능은 물론 생태계 유지 기능, 도심 완충 기능이 쇠퇴하고 물의 순환까지도 끊겨 생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또 동물 이동로가 단절돼 먹이를 구하기 어렵고 은신처가 줄어들면서 야생 생물의 서식 기반이 붕괴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도심 팽창 및 개발에 따른 산림 기능 쇠퇴로 비슬산의 나비목 곤충의 경우 과거 문헌기록과 비교, 3분의 2가 감소된 것으로 지난 2001년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지하수맥이 끊길 가능성도 있다.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장은 "일종의 터널 공사였던 임하-영천댐 도수로 공사로 인해 터널 지상구 수맥이 끊겨 인근 마을의 하천과 샘이 말랐다"며 "터널식 도로를 건설한다 하더라도 지하수맥 단절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류 회장은 또 "20~30분만 둘러가면 되는데 왜 수 천억원의 거액을 들여 환경을 파괴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창면의 타구 편입안 등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지리적 격리·군청 이전 등을 핑계로 한 도로 건설 추진은 중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내세워 성명서를 내고 비슬산 도로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산을 절단내 도로를 건설, 교통 체증을 해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안일한 발상"이라며 "비슬산 도로 건설은 산의 맥을 끊을 뿐 아니라 생태축 등 환경을 파괴해 결국 비슬산의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옥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편리성만 추구하면 한도 끝도 없어 아예 산을 몽땅 없애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서울의 경우 북한산 관통도로를 계획했다 지난해 시민단체 및 종교계 등의 반대로 중단됐고,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노선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처럼 지역 환경 보존을 위해 시민 및 각종 단체들과 함께 건설 반대 운동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신중한 접근을
도로 건설로 인한 경제적 이득과 생태계 파괴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을 한 뒤 건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지역 생태계에서 비슬산은 팔공산보다 중요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생태계를 단절, 파편화하고 야생 자연지역을 조각내는 사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인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지역개발실장은 "환경 및 교통·토목·도시계획 등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도로 건설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환경영향평가 등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할 때에도 형식적인 평가가 아니라 실질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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