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지하철 참사-정신병리 실태

지난달 18일 발생한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시민들이 충격에 빠져 있다.

워낙 중대한 사태이다 보니 관심도 사건 자체에 집중돼 방화 용의자가 최대의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이 잊혀진 듯하다.

그러나 방화의 발단이 된 용의자의 정신병리적 문제는 결코 간과돼서는 안될 우리 사회의 숙제이다.

지난달 15일 역시 대구에서 발생했던 가족간 살인사건도 망상증의 결과로 분석돼 있다.

◇입원치료 필요 환자 역내에 1만6천명

정신분열증, 망상증, 양극성 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전국의 환자는 전체 인구의 약 2.7%인 120여만명, 그 중 입원 치료가 필수적인 중증 환자는 13만여명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이 추정을 적용할 경우 대구.경북의 정신질환자는 15만여명이 되고 중증환자는 1만6천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역내 공식 보호.치료 기관은 전문병원 10여개와 정부지원 요양시설 7개 등이 고작이다.

여기서 수용.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5천여명에 불과하다.

중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대책 없이 방치되고 상당수는 굿 등 민간 처방에 맡겨져 있는 셈.

역내 정부 지원 요양시설은 대구의 정심수양원(미곡동) 성부정신수양원(복현동), 김천 중생원, 안동 대성그린빌, 영주 십자정신요양원, 영천 마야정신요양원, 상주 천봉산 요양원 등이다.

총 수용 정원은 1천800여명이며 현재는 1천600여명이 요양 중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통틀어 48억여원에 불과, 운영비.인건비로 쓰기에도 빠듯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전문 치료인력이나 의료설비 완비 및 치료 프로그램 운영 등 환자 재활을 위한 여유가 없다는 것.

특히 1997년부터 '계속 입원 심사 청구제'가 시행되면서 정신질환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양시설 밖으로 내몰려야 하는 환자들까지 생겨났다.

백준기 사회복지사는 "더 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이 제도가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강제퇴원 조치됐던 환자의 80% 정도가 다시 입원하고 있다"며 이 제도가 오히려 환자 보호에 장애가 된다고 비판했다.

◇어느 정부지원 요양소의 모습

지하철 방화사건 발생 전날이던 지난달 17일 오후 2시쯤 대구 모 정신질환자 요양시설. 30여개 다닥다닥 붙어 있는 4평 남짓한 방들에는 요양자 7, 8명씩이 들어 있었다.

1950년대 판자촌을 연상시키는 건물. 방 통로.창문, 식당 출입문 등은 모두 쇠창살로 막히고 밖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시설 관계자는 "무단 이탈과 난동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환자들이 햇볕을 볼 수 있는 운동시간은 오전.오후 통틀어 한 시간. 치료하고 재활시키는 프로그램은 극히 미미하다고 했다.

상주 전문의는 없고 매주 한 차례 들르는 '위탁의사'가 한 명 있다고 했다.

그의 주당 진료시간은 4시간 정도. 요양소별로 평균 200여명에 달하는 환자를 제대로 돌보기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재활치료는 매주 요일별로 한 시간씩 돌아가며 하는 종이접기, 단학, 퀼트, 약물교육 등이 전부. 수간호사와 관리원 한 명이 매주 금요일 환자 5, 6명씩을 데리고 시내 구경을 시키는 게 적응훈련의 전부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 요양소들에 공통적인 것. 역내 요양소 중 전문의가 상주하는 곳은 없고 대부분은 주당 한번 순회 검진하는 위탁의사 1, 2명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들 의사들이 주로 하는 일은 약 복용이나 추가 질병 여부를 점검하는 수준. 200여명의 요양자를 관리하는 인력은 전부 다해야 10여명뿐이라고 했다.

ㅅ요양원 한 간호사는 "현재의 인력.예산으로는 수용.관리에만도 벅차 재활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고 했다.

◇주술에 취약한 환자들

이렇다 보니 정신질환자 상당수는 굿당, 사설 요양소 등을 찾게 된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일부 사설 요양시설에서는 치료를 이유로 '민간요법'이나 '주술법' 등을 사용, 환자 상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무속인 박모(54.여)씨는 "병원에서 못 고친 정신질환자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고칠 수도 없으면서 일부에선 굿이나 기도 등을 권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달 15일 가족간 살인사건으로 숨진 이모(25)씨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으나 전문병원 치료 없이 망상에 사로잡힌 어머니에 의해 굿당 등을 전전한 것으로 밝혀졌었다.

한 정신장애인 재활 전문가는 "숨겨진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관리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지난번과 같은 사건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며, "각 동사무소의 사회복지 요원들이 이들을 발견해 전문치료를 받게 유도토록 제도화 하는 등의 사회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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