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긴급점검> 재난감식 전문화·제도정비 시급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대형 인명재난 때 희생자의 유해 수습 및 신원 확인을 위한 감식 작업이 전문인력 부족, 장비 수급난, 조직 운용의 독립성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법의학 교육을 위한 법의.병리 전문의 제도 신설 △모든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 개설 △법의학 전문가.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 강화 △수사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 보장 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전문의 제도 도입 필요 = 전문가들은 우선 감식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미국식의 '법의전문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아직 공인된 법의학 자격제도가 없다는 것. 미국의 이 제도에서는 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가 600회 이상 부검 경력을 쌓았을 경우 법의학의사 자격 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현재 국내 법의학 전공자 숫자는 전국을 다 합해도 30여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특히 근래로 올수록 병리학.법의학 지원자가 감소하고 있는 실정. 대한법의학회 곽정식(경북대) 회장은 "전국적인 부검.감식 수요를 감당하려면 법의학 전문의가 최소 200여명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1981년 전국에 25명 정도 됐던 병리학 지원자가 올해에는 11명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큰 사건 나면 나머지 업무 중지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있는 전문인력을 제외하고 현재 각 대학을 근거로 활동하는 법의학 교수는 서울대 3명, 경북대 3명, 연세대 2명(법치의학), 고려대 2명, 가톨릭의대 1명(법치의학), 전남대 1명, 전북대 1명 등 13명 불과하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이때문에 규모가 큰 대구 지하철 참사 경우 인력 충원을 위해 대검찰청 유전자검사실 요원 2명, 연세대.조선대 치의학자 5명까지 참가해야 했다. 인력난으로 감식 작업이 늦어지면서 전동차 내 수습 유골 숫자가 126명, 135명, 142명 등 세 차례 수정되기도 했다.

곽 회장은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처럼 사망자 수가 많고 감식이 장기화되면 국과수 본원과 지원의 법의학자가 총동원될 수밖에 없어 국과수의 다른 기능은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활동 여건 정비도 시급 = 감식에 필요한 전문 장비 상당수도 일반병원에서 옮겨 올 수밖에 없어 원활한 감식 작업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경우에는 전동차 내 유골 조각과 유류품 잔해 투시에 필요한 '씨암'(C-ARM) 기기를 감식작업 착수 8일째인 지난달 26일에야 투입할 수 있었다는 것.

국과수 법의학부 안에 생물학과.범죄심리학과.문서사진과와 함께 설치돼 있는 법의학과를 독립 기관으로 간주, 유골 수습 작업에 대한 다른 기관의 간섭을 배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 등의 1차적인 사고현장 보존 권한.책임을 국과수 등 감식기관에 넘겨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돼 있다.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때나 대구지하철 참사처럼 현장이 훼손될 경우 후속 감식 작업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기때문. 곽 회장은 "지하철 참사처럼 현장이 훼손되면 유류품이나 실종자 파악이 미궁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했고, 경북대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이번 사고 경우 경찰이 육안에만 의존해 파악한 유골 숫자를 미리 발표한 탓에 유골 수습에 부담이 컸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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