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문화가 있는 도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새 천년을 맞으면서 문화를 늘 옆으로 밀쳐두었던 우리 정부도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가 왜 중요한지, 문화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말로만 '문화'를 외친 감이 없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화는 삶 그 자체'다.

삶이 우리 앞에 주어졌듯이 원래 문화란 저절로 마음이 움직여서 나타나는 것이다.

때론 바르고 아름답게, 때론 거칠고 비틀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 문화다.

시가 그렇고, 그림이 그렇다.

쾌적한 집과 편안한 길, 아름다운 정원, 좋은 인간관계도 문화이고, 심지어 술과 전쟁에도 문화적 코드가 담겨 있다.

좋은 문화가 나오려면 문화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는 말할 수 없이 불행하고 슬픈 일이지만, 제대로 다듬어진 문화적 마인드없이 문명의 이기를 만들고 운영했기에 낳은 비극은 아닐까? 바로 문화의 부재라고 할 수 있겠다.

문화는 삶 그 자체

대구 오페라하우스 개관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대구가 세계 오페라축제의 도시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그동안 대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민 모두가 노력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모자란 탓도 있다.

정책 주체들의 문화적 마인드 부재가 실패에 한 몫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시민들의 잠재된 문화적 역량을 결집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까운 예로 부산시는 국제영화제를 통해 시민들의 문화적 역량을 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화제를 통해 얻은 이미지 제고와 국제적 문화도시로서의 홍보효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은 산술적으로 계량화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이제 갓 출발한 통영국제음악제 역시 작은 도시에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음악가들이 모일 수 있게 한 것은 '윤이상'이라는 작곡가가 아니라 윤이상의 가치를 알고 그를 문화적 코드로 활용한 시민, 문화예술인, 행정가들의 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구시민에게는 오페라를 문화적 코드로 활용하고 이벤트로 만들어 상품화할 문화적 능력은 없을까? 그동안 대구시민들은 이탈리아 밀라노 시민들처럼 '라 스칼라' 극장을 접하지 못했고, 그 곳에서 세계적인 가수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역량이 잠자고 있을 뿐이다.

또 '라 스칼라'로 인해 그들처럼 진정한 행복감을 느껴보지 못했고 자부심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없기에 대구는 문화 불모의 도시처럼 느껴져 왔고 자조해왔다.

이제 곧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우리 곁에 선다.

대구를 세계적인 섬유도시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세계 대학생들의 건강한 땀과 숭고한 스포츠정신이 흐르는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구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대구를 세계 오페라축제의 도시로 만들어간다면 이 도시에 무형의 자산이 또 하나 생기는 일이다.

오페라 도시로 만들자

경제상황이나 사회가 어려운 때일수록 건전한 문화적 마인드를 갖고 양질의 문화를 키워나가고 향유하는 일은 중요하다.

대구 지하철참사가 엄청난 비극이 된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이런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바르고 친인간적인 문화처럼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

문화인프라에 국한된 투자가 아니라 인간을 보다 여유롭게 하는 문화적 소프트웨어에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들을 위해 궁전을 짓고 그들의 취향에 따라 예술을 꽃피우기도 하고 말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시민사회에서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문화예술을 꽃피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문화라는 수레의 고삐를 예술인들과 나눠 쥐고 협력해가면서 시민들을 문화의 영역으로 안내해 가야 한다.

대구가 세계적인 오페라축제의 도시로 탈바꿈하기위해 행정당국과 문화예술인, 시민이 함께 공감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절실해지고 있다.

최영은

(대구음악협회 회장.대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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