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대역사(大役事)를 무리하게 추진한 업보였을까? 한 50대 남자의 방화는 한순간에 대구시를 절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아직 대구지하철 1호선의 안전성과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2호선은 예정표에 따라 지금도 건설되고 있다. 2호선은 과연 안전을 확보하게 될 것인가?
--- 공사 현장에서 본 2호선 ---
18일 오후 2호선 중심 부분인 2-8공구(크리스탈호텔∼적십자병원)를 찾아갔다. 2호선 공사 현장에서는 토목 공사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터널 굴착과 골조공사 등 토목 공사의 전구간 현재 공정은 94%.
안전성 부분에서는 일단 1호선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1호선에서는 양방향 전동차가 맞붙어 달리는 반면 2호선의 대부분 구간에서는 상하행선이 떨어져 달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26개 역 중 19개의 구내도 그렇게 두 방향이 갈라져 있었다.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은 이를 '섬식 승강장'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한쪽 전동차에 화재가 나도 반대 방향 차에 옮겨붙을 염려는 줄어든다는 것.
1호선 처럼 붙어 달리도록 돼 있는 역은 '상대식 승강장'이라 불렸다. 그런 역은 다사.매곡.강창.대공원.고산.신매역 등 7개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상하행선이 갈라져 달리도록 설계된 것은 달구벌대로 위에 장기적으로는 고가차도를 만들려는 계획이 세워져 있기때문이라고 했다.
어쨌든 섬식 승강장에서는 승강장과 윗층을 연결하는 계단 폭이 훨씬 넓었다. 2-8공구의 경우만 해도 폭이 7m 가량 돼 보였다. 지하철 역사 전체 폭도 2호선이 1호선보다 넓었다. 달구벌대로 폭이 50m에 이르는 덕분에 역사 폭도 확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승객들의 편리성도 1호선보다는 나아질 듯 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1층에서 4층까지 곧바로 내려오도록 된 설계도 장애인 및 노약자.임산부 등의 이용 편리성을 높여줄 것 같았다. 삼성물산 양재영 현장소장은 "2호선의 역사 내 기둥도 1호선보다 더 굵다"며 "설계 때 내진성이 강화돼 안전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2공구(다사 구간) 승강장에는 전국 처음으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승객들이 느끼는 체감 안전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였다. 스크린도어는 승강장과 레일 사이에 설치되는 또하나의 문. 전동차 문이 여닫히는 것과 동시에 이 문도 개폐된다. 삼성중공업 송춘훈 소장은 "스크린도어는 전동차가 들어올 때 역풍을 막아 주고 취객이 레일 위로 떨어지는 것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안해 보이는 면도 없잖았다. 2-8공구 경우만 해도 지하 4층이나 되도록 깊어 승강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지상까지의 대피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다. 지하철건설본부 관계자는 지형적인 영향 때문에 대다수 역이 1호선보다 깊다고 했다.
2호선은 지하 2.3층에서 지하 4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 만큼 일자식 수직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화재 때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속도도 빠를 것으로 우려됐다. 지하 4층에서 불이 나면 단숨에 연기가 지하 1층까지 올라갈 것이기때문이다.
지하철건설본부는 최근 여러가지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시공사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전선관을 난연재로 교체하고 야광 타일을 박고 제연설비 용량을 올리며 휴대용 비상조명등을 벽면에 설치하는 등의 화재 대처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것이다. 2-12공구 시공사인 현대건설 엄진호 대리는 "난연재로 내부 치장재를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호선은 문제점이 발견돼도 설계를 고치기 힘든 단계였다. 두류네거리 지하공간개발 시공사인 대우건설 권종구 소장은 "역사 내부 내장재를 바꾼다 해도 지하공간에 들어 오는 상가에까지 같은 방식을 강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하철건설본부 한의수 공사1계장은 "이번 참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개선점을 고려하고 있다"며 "대구지하철이 다시는 오명을 입지 않도록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시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 2호선 전면 재점검 ---
◇대구시 살림으로 과연 지어낼 수 있나?
2조2천941억원을 들여 건설 중인 2호선(다산~고산 29km)은 1995년 첫 삽을 뜬 뒤 2005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10년 대역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3월 현재 종합 공정은 73%.
그러나 대구지하철은 빚으로 건설되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2호선의 대구시 자부담 투자액 8천787억원 중 66%(5천787억원)는 빚을 낸 것이다. 1호선 건설 때는 지방비 중 75%(7천954억원)가 빚으로 충당됐다. 이때문에 대구시는 지하철 빚 갚느라 다른 사업엔 엄두조차 못낼 지경이다.
지난해 말까지 지하철 빚 1조2천13억원을 갚았지만 남아 있는 채무는 올해 대구시 일반회계 예산 1조6천억원보다 많은 1조7천119억원에 이른다. 올해부터 2008년까지 지하철 빚만 매년 1천500억~4천억원씩 갚아야 할 처지. 1호선 빚조차 2015년이 지나야 거의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구지하철공사의 예측 자료도 나와 있다.
2호선 건설비는 지금 중앙정부와 대구시가 절반씩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이전까지는 30%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더우기 대구시는 1호선 지하철 사업비 1조5천187억원의 70%인 1조664억원을 자부담하는 바람에 이미 '골병'이 들어 있는 상태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 역시 엄청나고, 지하철을 운행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총 건설비가 2조2천941억원인 2호선 공사에는 앞으로 6천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돈에 몰리자 대구지하철은 운영 과정에서까지 '경영 효율성'만 강조하다 안전 투자를 도외시, 돈의 문제가 결국 사상 최악의 참사로 연결되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연 대구시는 지하철을 건설하고 운영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답변은 '아니다'이다.
지하철의 건설과 운영을 이 상태로 방치하다간 '대구에 미래는 없다'는 말이 이미 시민 정서가 돼버렸다. 어떤 형태로든 중앙정부가 나서 지하철 사업을 도맡아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일반화된 의견이다.
◇2호선은 안전한가?
역사와 터널 등 구조물은 화강암.타일.시멘트 등 불에 타지 않는 재질로 돼 있어 물론 화재가 나더라도 큰 위험이 없다. 관건은 전동차. 2005년 하반기부터 운행에 들어갈 지하철 2호선 전동차에 이번과 같이 방화가 발생한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2호선 전동차는 1호선 것보다 화재시 안정성이 일단은 다소 높아졌다. 2호선 전동차는 내장판이나마 영국공업규격(BS)에 따라 불연성 재료로 시공되기때문. BS규격은 지하철 전동차에 관한 한 가장 높은 안전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지하철건설본부 관계자는 말했다.
그러나 2호선 전동차도 바닥판.좌석.차량연결막 등은 1호선 것과 마찬가지로 KS규격에 맞춰 난연성 재질로 설계됐다. 이 설계대로라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불 확산에 관한 한 이번 참사 때와 사정이 크게 다를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 이야기이다. 이번에 대참사를 부른 1호선 전동차에서는 내장판.바닥판.좌석.차량연결막 등 모두가 '난연성'을 기준으로 한 한국공업규격(KS)에 따라 제작돼 휘발유 방화에는 순식간에 전동차가 전소되는 결과로 이어졌었다.
현재 대구지하철건설본부는 2호선에 투입할 전동차 168량에 대한 상세설계를 (주)로템에 의뢰해 놓은 상태이다. 금명간 단계적으로 제작에 들어가 2004년 10월 시운전을 시작한 뒤 2005년 하반기부터 상업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2호선 전동차의 제원은 1호선 것과 동일하지만 차량당 단가는 8억7천500만원으로 1993년 구입한 1호선 전동차(6억원)보다 2억7천여만원 비싸다. 이는 8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고 일부 내장재 시설을 업그레이드한데 따른 것.
이번 참사로 문제점이 드러난 후 지하철건설본부는 바닥판.좌석.차량연결막까지 BS규격에 맞추도록 설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구 기전부장은 "이를 위해서는 150억원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건설본부는 2호선 역사 시설에 대해서도 몇가지 보완할 방침이라고 했다. 환기시설 용량을 1호선 보다 10~20% 늘리고 1룩스 밝기인 비상유도등을 10룩스 이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전 역사가 단전돼야 비상전원이 들어오도록 설계된 전원공급 시스템을 바꿔 어느 곳이든 정전되면 곧바로 해당 역사 비상전원 시스템이 가동돼 조명등을 켤 수 있게끔 축전 설비를 보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같이 바꾸고 나면 이번 참사처럼 5ℓ가량의 휘발유를 뿌리는 방화 사건이 발생해도 안전해질까? 이용구 부장은 "휘발유 5ℓ는 자체적인 연소만으로도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만큼의 양이어서 대피하지 않으면 피해가 날 수밖에 없으나 전동차가 전소되는 일은 없고 유독가스도 치명적일 만큼 대량 발생하지는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승객들에게 대피 시간만은 충분히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장도 이번 참사로 지적된 몇가지 개선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피해 확대 원인으로 지목된 전동차 운행용 전기 공급 체계 개선에 대해서는 "쇼트가 된 뒤에도 전기가 계속 공급된다면 승객들이 치명적인 감전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화재가 났을 때 지하철 운행 전력이 끊기도록 만들어 둔 것은 오히려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의견이었다.
확산식 소화기나 스프링클러를 전동차 안에 설치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전동차 특성을 전혀 고려 않은 현실성 없는 대안"이라고 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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