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축산농 부채 심각... 신용불량자 속출

축산 부농을 꿈꾸던 김모(45.안동시 녹전면)씨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값 폭락 이후 감당할 수 없는 농협 빚 때문이었다. 축산농가 부채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많은 축산농들도 자신의 빚을 가늠해 보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우울한 모습이다. 지역 농.축협도 획기적인 대책없이는 비껴갈 수 없는 총체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경북 북부지역 주요 축산지인 안동의 실태를 바탕으로 빚에 허덕이는 축산농들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축산시설자금 규모와 농가 빚= 안동시의 경우 지난 1994년부터 97년까지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에 따른 축산부분 경쟁력 강화를 위해 127개 한우 사육농가와 72개 돼지 사육농가에 105억원을 시설자금으로 지원(융자)했다. 축산농가가 떠앉고 있는 대부분의 부채는 이때 지원된 정책자금이다. 막연한 희망만 갖고 시설자금은 정부로부터, 운영자금은 가계대출이나 사채로 조달해 축산을 시작했지만 연이은 소값 파동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정타는 90년대 후반 외국산 생우 수입 허용이었다. 가격 폭락사태가 예견되자 축산농들은 애완용 강아지 값에 송아지를 투매하다시피 축사를 비웠고, 이후 소를 사육하고 싶어도 자금 여력이 없어 손을 들었다.

돼지사육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수출로 잠시 호황을 누린 것이 화근. 시세가 좋자 경쟁적으로 시설과 사육 두수를 늘였으나 구제역과 돼지콜레라라는 복병을 만나 가사상태에 놓였다. 농림부는 한우의 경우 시장개방에 앞서 사육규모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 했고, 축산업계에서는 그 적정두수를 농가당 100두로 잡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한 정책자금 지원농가는 10%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경쟁력은 고사하고 빚만 떠안고 말았다. 현실을 모르는 실패한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신용불량자 양산= 당초 축산정책자금 융자금 상환은 3년 거치 7년 균분상환 조건이었다. 지난 98년 이후 3차례의 농가부채 경감조치로 상환기간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 . 그러나 상환기간이 연장되면서 1년 이상 이자를 못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가 안동에서만 자금 지원농가의 16%인 32명에 이른다. 축산을 중단하거나 경영 악화로 이자조차 못낼 처지에 놓인 잠재 신용불량자는 50여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실상 파산상태이고, 운영자금이 고갈돼 더 이상 축산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빚을 갚을 길도 없다.

▲대책마저 없는 상황= 정책자금을 받아 축사를 짓고 1년 이상 축산을 하지 않을 경우 융자금을 강제회수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이마저도 이행 불가능이다. 축산농 대다수가 연대보증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융자금을 강제로 받을 경우 연쇄도산이 불 보 듯 뻔하기 때문이다. '민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축산농가들의 민심은 흉흉한 상태다. 안동축협 권영건 전무는 "빚에 몰린 축산농가들이 재기를 위해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하지만 채권보전책이 없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정책자금 이자 대폭 인하와 상환기간 추가연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권모(54.안동시 서후면)씨는 "축산 정책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바람에 농협에서 영농자금도 빌릴 수 없는 절망적인 사정"이라며 "정부가 다각적인 구제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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