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가에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또 본래 생겨남도 태어남도 없고 없어짐도 죽음도 없다. 단지 우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존재나 현상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그대로 있지만 우리들이 보지 못할 뿐이다. 없어진 존재나 현상들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나 현상들은 찰라로 무상하게 변하고 순간순간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6일 대구를 찾아 지하철 참사를 딛고 새 희망싣기에 나선 틱낫한 스님의 법문은 간단하면서도 쉬웠다. 그러나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그러기에 이날 오후7시부터 2시간30분이나 계속된 강연에도 경북대 대강당을 가득 채운 2천명 넘는 청중들의 숨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고요와 적막의 시간같았다. 강연 중간중간 울리는 경쇠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30년 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은 베트남에서의 전쟁상처와 그 때문에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져간 제자들의 애달픈 사연과 지하철참사 애도 이야기로 말머리를 꺼냈다. 고통을 넘어 희망과 용기를 갖고 새 삶을 꾸려 나가는 방법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스님은 이를 "소리와 모습, 존재의 현상들은 근원적으로 보는 방법"이라면서 "상과 모양이 없는 세계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방법의 근거는 금강경이라 덧붙였다.
스님은 구름과 종이, 성냥갑을 예로 들며 존재의 무상함을 풀어나갔다. 하늘에 많은 모양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색의 구름이 있으나 언제나 그대로 있지 않는다. 비가 되어 내릴 수 있다.그 구름이 비록 보이지 않지만 정말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비로 변했을 뿐이다. 스님은 구름이 다른 형태인 비로 변했을 뿐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구름이 없어졌다고 슬퍼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종이는 어떠한가. 종이 역시 푸른 나무와 숲이 없으면 가능할까. 푸른 나무와 숲은 햇빛이나 비가 없어도 자랄까. 비는 구름없이 가능한가. 공장의 직공이나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종이는 만들어질까. 우리는 습관적으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태어나고 생겨났다고 하고 존재하던 것이 없어지면 죽음이라 할 뿐이다. 과연 그런가. 종이는 나무와 숲, 구름과 비.햇빛.물.흙 등과 같은 여러 조건들이 맞았기에 종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종이는 태어나지도 생겨나지도 않았다. 이러한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부처님의 참모습이라 스님은 설법했다.
성냥도 마찬가지다. 성냥이 있다는 것만으론 불이 켜지지 않는다. 성냥과 공기속 산소에다 성냥을 켜야 하는 조건들이 맞아야 불이 켜진다. 성냥불이 켜지고 꺼지면 성냥이 없어지고 사라진 것인가. 스님은 "그렇지 않다. 연기는 하늘에 올라 구름에 닿았고 성냥불의 따뜻한 온기는 가슴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스님은 종이를 성냥불에 태워봤다. 불은 꺼지고 연기는 하늘의 구름에, 온기는 가슴 속에, 남은 재는 땅 속에 들어가 한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바탕이 됐다. 성냥과 종이는 없어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우리곁에 남아있는 것이다. 스님은 "이제 부처님이 모두에게 준 지혜의 눈으로 습관적 인 태어남과 죽음의 시각에서 벗어나자"고 강조했다.
강연 중간중간 몇차례나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애도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극낙왕생을 기원하던 스님은 참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희망과 새삶을 위해 '무상'의 진리를 빨리 깨닫자고 제의했다. 스님은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죽을 수 없고 새로운 현상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잘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 있고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위로했다.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곁에서 미소짓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스님은 무상의 진리를 깨닫는 중요성과 함께 현실에 대한 충실함의 필요성을 빠뜨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무상하게 변하는 만큼 지금 이시간 살아있음에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고 아끼는데 소홀하지 말 것을 스님은 거듭 충고했다. 고요한 마음으로 가족이나 부모, 자식들을 껴안고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를 전하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이 순간의 현실의 중요성에 대한 스님의 신념은 경북대 강연회에 앞서 이날 오전 동화사 방문에서도 잘 나타났다.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에게 점심공양 뒤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전달한 자신이 직접 쓴 휘호 '정토는 지금이다. 그렇지 않으면 없다'(The pure land is now, or never. 現法淨土)란 액자선물에서도 현실의 삶에 충실할 것을 부각시켰다.
스님은 참사애도와 함께 방화범이 자신의 고통을 털지 못하고 참사을 일으키도록 만든 사회에 대한 경종도 울렸다.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에도 누구도 그를 돌보지 않았고 도와주지 않았기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라 진단한 스님은 "오직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힘만이 그런 범죄자를 돕고 해방시킬 수 있다"면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촉구했다.
식전행사를 제외한 2시간에 걸친 스님의 이날 강연에는 2천100여석의 대강당을 매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상당수 방청객들은 강당 밖에 설치된 멀티미디어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한편 틱낫한 스님일행은 이날 강연을 마치고 서봉사에서 하루밤을 묵은뒤 26일 오전 광주로 떠났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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