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따라 세월따라-바리캉 든 거리의 이발사

기계충, 서캐, 바리캉, 포마드··. .지금은 잊혀진 단어들이다.

부스스한 까치머리를 참빗으로 훑어내면 서캐가 하얗게 쏟아졌다.

요즘은 하루만 안감아도 못견디는데, 어떻게 우글대는 이를 머리에 달고 살았을까.

촌스런 그림이 걸려 있던 옛 이발소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그림도 있었지만, 개울 옆 물레방아 그림이 가장 많았다.

물레방아와 이발소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물레방아 그림 옆에는 으레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 '삶'이 자리잡고 있었다.

연탄 난로 연통에 걸린 빨간 체크무늬 수건들, 하얀 김을 내뿜던 찜통, 난로 옆에 따뜻하게 데워진 면도용 비누거품, 빨간 페인트로 쓰여진 미닫이문의 '이용원'이란 글씨….

가죽혁대에 면도날을 가는 쓱싹거리는 소리가 왜 그리 섬뜩했던지.

이발소에 굴러다니던 선데이서울. 양쪽으로 펼치면 나오는 야한 포즈의 브로마이드 여인을 훔쳐보며 성에 눈을 뜬 것도 이때였다.

아이들은 어른용 의자의 팔걸이에 나무판을 대고 앉아 머리를 깎았다.

날이 무딘 기계에 머리털이 한 움큼씩 뜯기기도 했다.

기계 하나로 여러 사람이 깎다 보니 기계충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인기 만화 주인공 '꺼벙이'의 기계충 땜통 자국은 당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궁벽한 살림에 이발소도 못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당이나 동네 골목 양지바른 곳에 통걸상 하나 달랑 내놓고 머리를 깎기도 했다.

머리를 내맡기고 졸고 있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은 힘들고 고단했던 당시에 흔치 않게 평화로운 전경이었다.

1964년 오포산 자락(현재 봉산문화거리 인근 언덕)의 거리 이발소 풍경이다.

고무신에 찡그린 아저씨의 표정이 재미있다.

머리를 감지 못하기에 혹 머리카락이 들어갈까 보자기를 꼭 쥐고 있다.

나른한 봄볕이 내리쬐는 골목안. 부산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 봄 햇살같은 희망이 언뜻 보인다.

글: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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