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로마는 후대의 여러 강대국들이 그 위세를 빌리도록 만들었다.
국가상징인 독수리 문장(紋章)이 그 예다.
독수리 문장은 BC 104년 로마가 육군개혁을 단행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6개의 백인대(century)를 1개 코호트를 묶고, 10개 코호트로 1개 군단(6천명)을 만들어 독수리가 든 군기를 부여했다.
당시까지 로마군은 새끼줄을 묶은 장대 군기로 부대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독수리 문장은 이후 세계 열강의 국가상징으로 사용된다.
AD 962년의 신성로마제국, 비스마르크의 제2제국이 모두 독수리 문장을 계승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도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며 독수리 문장을 썼다.
나폴레옹은 자기 연대의 군기에 독수리를 담았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는 미국이 독수리 문장으로 로마의 후계(?)임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상징을 통해 국가의 정통성과 위대성을 알리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동양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존엄한 존재인 용으로 말하자면, 천자가 발톱 5개 짜리로, 왕은 발톱 4개 짜리로 상징된다.
호칭에 있어서는 천자만이 폐하(陛下)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자를 '궁정의 섬돌 아래서' 대리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왕 역시 전하(殿下)에서 우러르게 된다.
대신은 각하(閣下)가 되는데, 한때 일본 잔재를 답습해 대통령 존칭으로 사용되는 넌센스가 빚어졌다.
이 같은 호칭법은 중국 진.한 이후에 생긴 것으로, 상대와의 거리에 따라 격을 달리해 붙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라는 명칭이 중국.일본의 시빗거리가 된 요즘이다.
중국은 '중심국가'가 '동북아 큰 형님국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정부가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원회'로 물러섰다니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이미 명칭을 고치기로 한 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처사가 편협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라마다 자국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가 경제중심국가를 지향한다는 데 웬 딴죽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도 너무 쉽게 용어를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사(修辭)나 이로(理路)도 없이 곧바로 굴복한다는 게 국가의 존엄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 일이겠는가. 정부의 언어능력 부족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거꾸로 중국(中國)이나 일본(日本)의 국가명칭을 시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중국이 땅의 중간에 있는 나라며, 일본이 태양이 솟아나는 본고장에 있다는 말인가. 자기들은 중심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오만에 다름 아니다.
박진용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