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발발 이후 경기가 위축되는 반면 물가는 오히려 상승하는 '스태크플레이션'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제2의 외환위기 사태'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고학력자 고용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취업 경쟁에서 약세를 면치 못해 온 대구·경북 지역 대학생들이 극심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학 교수들 사이에서도 "정상 강의가 불가능하다"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전쟁이 미워요!
경북대 상대를 오는 8월 졸업할 김지용(26)씨는 봄햇살이 전혀 반갑지 않다고 했다.
지난 겨울방학 때까지만 해도 취업에 대한 희망이 높았으나 지난 달 불안으로 바뀐 뒤 이 달 들어서는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는 것.
김씨는 "경기가 갑자기 나빠지면서 빨리 취업을 확정 짓자는 심리가 강해져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 원서 쟁탈전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며 "성적순으로 원서를 골라가는 1·2·3순위제를 도입하는 등 원서가 도착하는 날엔 난리가 난다"고 했다.
같은 대학 인문대 대학원생 김정훈(27)씨는 "봄이 되면 취업난이 풀릴까 싶던 기대에 이라크전이 쐐기를 박아버렸다"며 "기업체 취직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쪽으로 진로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여학생들의 고민은 더 심했다.
실력이 있더라도 불경기엔 성차별이 더 심해질 위험성이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 대구가톨릭대 인문대 4년 김가람(22·여)씨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쓴 돈만도 최소 1천만원 가까이 될 것"이라며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요즘같은 최악의 경기에서는 지방대 출신에다 순수학문 전공자, 거기다 여자인 지원자를 뽑으려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을 것 같아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벌써부터 미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직종·급여 불문
계명대 공대 4년 안재원(26)씨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라크전 이후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추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며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는 도저히 취업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자신뿐 아니라 대다수 동급생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
대구 북구청 취업정보센터 이정란 상담원은 "지난 해 이맘 때까지만 해도 대학생은 구청 취업정보센터를 거의 찾지 않았으나 올해는 벌써 100여명이나 구직 등록을 했다"며 "예전엔 사무직이어야 한다는 대학생이 대다수였으나 요즘은 영업직도 좋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 전했다.
또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원하는 월급도 지난해까지는 대부분 100만원 이상이었으나 올 들어서는 "90만원 이하라도 좋다"는 구직자가 더 많다고 했다.
그러나 직종과 급여 눈높이를 낮추더라도 고학력 구직자들의 올해 구직은 쉽잖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노동부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이신희 실장은 "오는 10일 대구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올 상반기 취업박람회에 구인업체로 참여할 회사를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며 "지역 기업들을 찾아 다니며 섭외했지만 지난 해 구인 인원 1천명에 비해 30%나 적은 700여명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채용정보 전문업체 '인크루트'가 지난 달 28일까지 5일간 전국의 상장 등록사 318개를 대상으로 2분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 2분기 채용 예정 기업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94개(29.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분기 채용을 포기한 기업은 지난 해보다 93%나 증가했고 채용 계획을 확정 짓지 못한 기업도 73.9% 늘었다.
◇전문가 진단
지역 사립대 한 교수는 "대기업 위주 고용시장에서 지방대생들의 소외가 더 심해지고 있어 4학년 일반 수업은 물론 전공과정 수업조차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사태는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그러나 "단순히 대기업들이 지방대생을 차별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취업난을 뚫을 수 없다"며 "지방대생들의 문제는 기업이 원하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취업정보 업체인 갬콤 금용필 사장은 "지난해 채용이 활발했던 금융·유통 등 업계가 채용 인원을 크게 줄일 것으로 보여 체감 취업난이 커지고 있다"며 "취업을 유예하기보다는 눈높이를 낮춰 경력을 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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