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밝은세상-화재때 이웃 구하려다 중화상 감동

봄볕이 따뜻한 4월이다.

겨우내 고이 간직해 두었던 나들이용 물건들을 잔뜩 싣고 산과 들로 혹은 바다로 향한 행렬에 도로가 몸살을 앓을 정도다.

특히 TV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들 속에 끼어있었던 행복한 한 가정에 지난달 23일 새벽 5시53분경 발생한 화재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다.

나는 당시 계속되는 화마와의 전쟁에 심신이 지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던 때였다.

그 때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는 남편이 두 자녀와 탈출하고 수분 후에야 부인이 75% 화상을 입은 채 119대원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깊이 잠들었더라도 어린 자녀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부인을 간과할 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인이 화상치료전문병원에 입원하고 난 후, 동료직원에게서 그 이유를 듣고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남편은 먼저 두 자녀를 데리고 대피하고, 부인은 기숙사 옆방에 있던 청년을 구하기 위해 온힘을 쏟다 큰 화상을 입은 채 119구조대원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끝내 그 청년은 현장에서 질식해 사망하고 말았지만 자신보다 몸집이 두 배나 되는 청년을 구출하기 위해 일신을 돌보지 않는 살신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요즘처럼 이기적이고 자기 가족중심적인 현실을 감안할 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고가 난 지 보름이 된 지금도 희생정신을 가진 그 부인은 여전히 병상에서 잔인한 봄을 맞고 있다.

부인의 마음 속에 있는 풍성한 사랑의 씨앗이 결실을 맺어 하루빨리 병상에서 일어나 어린 자녀가 기다리는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부족해도 온 가족이 건강했던 그때처럼….

무명 소방관(인터넷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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