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춘수칼럼-왜 이리 극성인가?

극성스럽다는 말은 문자를 써서 다르게 말하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것이 되리라. 주책없이 허풍을 떤다는 것이 된다.

점잖게 말하면 교양 없는 짓이요 얕잡아 말하면 촌스러운 짓거리가 된다.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부지기수로 많을 것 같다.

그중에 가장 잘 눈에 띄는 한 둘만 들어보기로 하자.

해외여행이 그야말로 극성이다.

너도나도 한번 갔다오지 않으면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

어떤 두메산골 촌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한해에 열 번 스무번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하다.

특히 자주 나다니는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그야말로 팔자 좋은 사람들은 의례히 들고오는 선물(?)이 있다.

위스키나 브랜디다.

그것도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몇십만원씩 하는 고급품들이다.

이런 것들을 마시는 층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고급 위스키 소비등급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한다고 하고 있다.

어이없는 일 아닌가? 참으로 남새스럽다.

국내 주류소비량 중에서도 외국주류가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것도 고급품들이 대종을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도 희한한 일은 이런따위 고급주를 마시는 법도를 모른다.

어떤 환경(분위기) 속에서 어떤 절차로 얼마만큼 어느 용기에 담아서 마셔야 격에 맞는다는 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뭐 때문에 이런 따위 고급주를 마시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

그냥 남이 그러니까 나도 따라 그런다고 할 수밖에는 없다.

그래야만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말 촌스럽다.

위스키나 브랜디의 본고장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얼마나 우스운 풍경이겠는가? 우리사회가 아직도 이 정도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들여다봐야 한다.

조금 말이 딴데로 옮겨져가야 하겠다.

어느 심리학자는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두가지 언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아직 의식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 의식의 혼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신분열을 일으켜 사고기능을 파괴하게도 된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특히 우리의 경우처럼 언어계통이 다른 남의 언어를 배우려는 처지에 있을 때 더욱 그 점이 염려스러워진다.

지금 우리 주위는 어떠한가? 댓살난 어린이들의 언어(영어) 조기교육이 요원의 불처럼 번져있고 또 번져가고 있다.

너도나도 그 불 속에 뛰어들지 않으면 아이구실도 못 할 것처럼 부모들이 서두르고 있다.

참 가관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이런따위 극성은 해외(특히 미국) 조기 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루라도 일찍 보내지 않으면 어떤 대열에서 낙오나 하는 것처럼 역시 서두르고 있다.

아이들이 그만한 어린 나이에 그쪽에 가서 얼마만큼 어떤 모양으로 적응이 될까? 그 아이들이 고국에 돌아오면 또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그런 따위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이 또한 너무 서두르고 있다.

참으로 지각없는 짓거리들이다.

우리보다 나은 수준의 지각을 가진 (자긍심을 가진)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아니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왜 여기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검토가 없었고 아직도 없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정부도 왜 뒷짐만 지고 있는지 역시 알고도 모를 일이다.

어린아이들이 고국을 떠나 몇 년을 남의 나라에서 지내게 되면 풍속 음식의 기호 놀이형태 교우관계의 미묘한 뉘앙스 등은 물론이요 의식상태까지도 우리의 토속적인 빛깔을 점점 벗어나게 되리라.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것이 모두 좋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남의 것에 물이 들어버리면 우리것을 등한히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마침내는 우리것을 덮어놓고 멸시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일정한 연령에 도달해서 사리분별을 어느 정도라도 가리게 되고 자기를 비판하고 아울러 남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그때 가서 남의 것을 접하고 배워도 늦지 않으리라. 그러는 것이 또한 순서요 사리가 아닐까?

김춘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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