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시끄러운 세상

"인간의 행복지수는 나라의 선진화 정도와 반비례한다". 100% 신뢰할만한 척도는 아니지만 개인의 행복이 나라의 발전 정도와 거꾸로 가는 예는 심심찮게 나타난다.

지난 98년 유엔조사에서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1위로 나타나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조사대상 54개국 중 소득 수준이 최하위였기 때문이다.

2002년 조사에서도 그러한 파격이 이어졌다.

행복의 객관적 조건으로 173개국 중 145위에 불과한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여전히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스위스, 독일, 미국, 일본 등 경제 선진국들을 앞질러 '행복지수 반비례의 법칙'을 확인시켜 주었다.

▲선진국 국민이 '불행의 경향'을 지닌 것은 과도한 생존경쟁과 소외의식, 갈등의 증가 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하나의 기술이나 기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짧아져 직업적 불안정성과 강박관념이 커지게 된다.

삶의 긴장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사회의 파편화에 따른 소외의식, 권리의식의 증대에 따른 갈등의 증가도 삶을 고달프게 하는 요인이다.

▲근자 우리 사회는 갈등의 홍수에 빠져 있다.

교장 자살사건에서 촉발된 학부모·전교조 간의 갈등, 반미와 북한 핵 사태를 둘러싼 노선갈등, 한총련 합법화와 관련한 이념적 대립, 정부의 언론과의 전쟁 등등. 문제는 이런 갈등을 가라앉히고 정리해 줄 주체는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오히려 갈등의 생산자 노릇을 할 때가 많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의 행복을 위해 서로의 목소리를 낮춰볼 수는 없을까.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고 했다.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고장난 라디오의 스피커 소리에 피로감과 어지럼증만 커질 뿐이다.

자기논리에 목청을 높이는 정부, 자기 정당성에 도취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이익집단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불행지수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언사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과격해져 사회적 갈등은 더욱 확대된다.

사회 곳곳이 살을 튀기고 피를 뿌리는 모습이다.

▲이런 난세에 갖게되는 기대가 있다.

대통령이 자기수양을 위해 명상에 잠긴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때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정치적 이익이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관조하는 명상과 여유다.

금욕과 절제의 모습을 보여주며 삶에 지친 국민들을 달래주는 그런 모습이다.

한 마디 시구에 귀를 기울이고, 국악공연에서 가벼운 몸놀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간의 금언(禁言)을 통해 사회에 청신한 공기를 불어 넣어줄 수도 있겠다.

세상이 하도 시끄러워 허튼 생각에 빠져보았다.

박진용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