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껌과 책

책이 귀한 어린 시절,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버지가 읽던 책은 한문이어서, 형이나 누나책은 일본 책이라 읽을 수 없었다.

해방이 되고 입학해도 일년 넘도록 교과서가 나오지 않아 선생님은 칠판글씨로 공부를 가르쳤고 2학년 늦게서야 교과서가 나왔다.

그나마 군데 군데 곰보가 된데다 누런 마분지에 검거나 흰 딱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어 그곳에는 인쇄조차 되지 않은 그런 책이었다.

그것도 수십번 수백번 읽고나니 지겨워 책이 있다면 십리고 이십리고 가서 빌렸고 걸어오면서 다 읽기도 했다.

나는 평소 고향에 전국 제일의 농촌문고를 만들어 주는 것이 꿈이었다.

전국에 새마을운동 바람과 재건 국민운동이 일어날때 나의 모든 것을 바쳐 농촌문고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추석명절을 맞았다.

나는 은근히 동리사람들이 마을입구에서 박수로 맞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 한사람 약속이나 한듯 말이 없었다.

고향사람들이 입이 무거워 좋든 나쁘든 표시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막걸리를 보내준 친구에게는 "자네 막걸리 잘 먹었네"라며 사람마다 침 마르도록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책 한권이면 막걸리 한말은 살 수 있었으나 나에게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알고보니 내가 보내준 책은 뒷간 화장지로 사용됐다.

그 당시 볏짚으로 뒷처리를 할 때라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아픔이 있었지만 독서운동의 중요함을 체득한 나는 지금도 기회있을 때마다 책을 기증하곤 한다.

현장에서 버리고 가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가져 가는 사람들 중에도 읽지 않는 사람이 70%쯤이고 대충이라도 읽는 사람은 1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만원짜리 책은 버려도 식당에서 주는 백원도 안되는 껌은 버리는 사람이 없다.

백원짜리의 껌보다 못한 것이 만원짜리 책이다.

거저 주어도 싫다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투후만은 "책은 문명의 전달자다.

책이 없으면 역사는 침묵하고 문학과 학문은 벙어리가 되고 과학은 절름발이가 된다"고 했다.

책이 없다면 오늘 우리가 있었겠는가. 이번 어린이날에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책 선물이라도 하면 어떨까.

대구소설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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