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내가 혼자 남은 집을

그가 열쇠로 잠그고 나간다

그는 나와 함께 이 집을

안에서 잠그고 있던 사람이다

나는 열쇠에 잠긴다

문에 잠기고

내게 없는 그에게 잠긴다

나에겐 나를 꼼꼼히 잠가주는 그가 있다

나에겐 나를 꼭꼭 잠가두는 그가 있다

- 이선영 '나에겐 그가 있다'중

그는 잠그고 나는 잠기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 관계란 그리움이나 사랑이라는 내용이 빠져 있고 그렇게 된 행위의 공식적 타성으로 되어 있다.

그런 가족단위의 사회성을 내적 코멘트나 회의 없이 드러내고 있다.

물론 카프카의 '변신'에서 보듯 갇힌자의 존재론적 질문 같은 것도 없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