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스승의 날'에

어느 비 오는 날, 길에서 스승을 만난 정인보(鄭寅普)는 질퍽한 땅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지조 있고 고결한 선비였던 그는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이 그러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의 주인공은 연못에 빠진 어린 제자를 구하고 자신은 죽는다.

이 죽음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왜 '죽음의 길을 택했는가'라는 화두(話頭)를 남김으로써 제자가 그 화두와 싸우면서 자라기를 바란 데서 비롯된 '숭고하고 장엄한 길'에 다름아닐 게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새삼 사도(師道)의 귀감이 되는 일화를 떠올려보는 건 세상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공교육이 흔들리고 사교육은 날로 기승을 부리는 양상이다.

교권 추락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교사들은 사회의 존경도와 예우는 물론 학교 안팎의 교권 경시 풍조, 학부모들의 간섭 등으로 허탈과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빗나간 교육 정책,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교사, 가정 교육의 부재가 불렀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유독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한국교총의 설문조사에서도 중·고생의 절반 가량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도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반면, '높아졌다'는 응답은 10.5%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육의 부실화와 교실 붕괴도 따지고 보면 교사의 권위가 위상이 실추된 데서 비롯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는지 모른다.

▲오래 계속돼 온 교단의 갈등이 여전히 덧나고, 그 반목과 대립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도 않아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 헐뜯는 '대결 구도'는 '상생(相生)'의 뿌리를 뒤흔들면서 상처만 깊게 할 따름이다.

오늘 각별히 이 공동운명체가 상호 인정과 존중으로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실추된 교사들의 명예와 교권을 찾아주고, '스승의 상'을 다시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리라.

▲교육이란 사람과 사람이 깊이 겹치는 일이며, '사람을 통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일'이다.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는 교육의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스승을 무시하는 제자는 부모나 사회관습·도덕 등도 가볍게 여기게 되며, 성인이 된 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자식을 남다르고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욕심보다 스승과 웃어른을 존경하고 따르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부모들의 생각도 절실한 시점이다.

스승을 존경하면서 '스승과 함께, 스승을 넘어'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살아나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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