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철(46·대구 효목1동)씨는 아내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부자(父子)가정' 가장이다.
일하면서 혼자 3남매를 키워온지 벌써 11년째. 젖먹이들이 어느새 중2(딸) 중1(딸) 초교6년생(아들)으로 컸다.
혼자서 엄마 노릇까지 하느라 눈물도 많이 삼켰지만, 곽씨는 이제는 웃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 꽃을 피워준 것은 같은 처지의 아빠들이 모여 어려움을 함께 극복토록 하는 대구 유일의 아빠 자족 모임 '자람회'였다.
◇아빠의 눈물로 쓴 육아일기
"아내 없이 애들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 다 못합니다.
다 포기해 버릴까 싶을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모자란 아빠를 탓하지 않고 구김살 없이 커준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바깥일로 나도느라 아이는 저절로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곽씨에게 닥친 연년생 아이들 키우기는 전쟁이었다.
시간 맞춰 우유·이유식 만들어 먹이는 일에서부터 하루 10여장씩의 기저귀를 빨아 대야 하는 일하며… 건설 공사장 미장공의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친 몸을 뉠 새도 없이 난장판된 방 안을 치워야 했다.
동네 아이들과 개구리 잡으러 간다고 나갔던 딸이 감전돼 손의 뼈가 드러나도록 심한 화상을 입는 일도 벌어졌다.
아이들이 하나둘 취학하면서 교육도 큰 걱정거리가 됐다.
한여름 땡볕이 얇은 슬레이트 지붕을 달구었던 날, 좁은 방 안에 가둬두다시피 했던 아이들이 퇴근해 오는 아빠가 반갑다며 눈물콧물 범벅된 채 합판 문을 마구 부수며 달려나왔을 땐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없이 지내느라 아이들이 종일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내 평생 그렇게 서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육아로 곽씨는 이제 주부실력으로도 9단은 됐다.
된장찌개, 열무김치, 초밥, 김밥까지 곧잘 해내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영락없는 홀아비 팔자"라고 했다.
◇힘든 부자가정들
상당수 부자가정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또 있었다.
심각한 생계난이 그것.
동촌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아들이었던 곽씨는 결혼 전만 해도 전국 야시장을 돌며 장사를 하느라 돈 걱정이라곤 해 본 적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IMF사태가 터지고 혼자 몸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거의 갚았지만 당시 진 1천여만원의 빚까지 그를 옥좼다.
그의 새 벌이 수단은 미장 일. 하지만 1998년 결국 영세민으로 지정됐다.
지금은 월 70여만원의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일주일에 3, 4일 공공근로를 해야 하는 조건부 수급자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몸이 아파 일을 못나가게 되면서 걱정이 커졌다.
곽씨는 부자가정의 특수성을 국가가 몰라준다고 아쉬워 했다.
가난한 부자가정은 경제적으로도 편모가정보다 나을 것 없을 뿐 아니라, 가장이 엄마 몫까지 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에 대한 전문 직업교육, 가정봉사원 파견 서비스, 학원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자식을 고아원에 보냈다고 합니다.
몹쓸 짓이지만 이해도 가는 일이지요. 국가가 좀 더 관심을 쏟아 준다면 결국 나중의 사회 부담을 그만큼 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구 안심복지관 시미경(35·여) 과장도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애 키우기는 모자가정의 어머니들 역할보다 몇 배로 힘들다"고 관심을 환기했다.
◇아빠·아이 함께 자라는 '자람회'
힘든 시절, 곽씨를 붙잡아 준 것은 대구에 하나밖에 없는 부자가정 모임 '자람회'였다.
곽씨는 이 모임의 '모범 아빠'로 선정돼 31일 대구시장 표창을 받았다.
'자람회'는 안심종합사회복지관이 저소득 부자가정을 위해 마련한 자조모임. 2000년 대구시 지원 아래 출범한 자람회에는 2000년 19가정, 2001년 27가정, 2002년 17가정, 2003년 27가정이 참가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거나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방문 학습지도 봉사자들에게로 연결돼 공부에 도움 받고, 수영장·놀이시설 등 문화체험 기회도 제공 받는다.
자람회는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행복캠프와 여가활동을 진행해 편부 가정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며, 중고생 교복 및 학용품 지원 등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버지들은 한달에 한번씩 모여 효율적인 자녀 양육 기술을 나누기도 하고, 빗나가는 아이에 관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많은 산 경험을 얻는다.
연 2회 자녀 양육과 관련한 부모교육을 받고, 생계보전금이나 밑반찬, 개별·가족상담 등도 제공받는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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