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불문언근(不問言根)

조선왕조는 이상적 유교정치를 목표로 한 관료지배의 사회였다.

왕권과 신권은 유교이념을 둘러싼 견제와 균형의 관계였다.

왕이 유교이념에 밝지 못하면 신하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 같은 분도 유교이념에 통달했기 때문에 관료집단을 자신의 주장대로 이끌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관료지배 사회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여 언로를 개방하고 권력을 분산시켰다.

그런 점으로 보면 조선왕조가 오늘보다 더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조선왕조 언관 언론의 핵심은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 즉 삼사(三司)였다.

이들 삼사의 관원인 언관들은 종2품에서 종6품의 벼슬아치들로 사헌부 6명, 사간원 5명, 홍문관 13명 등 모두 24명 정도였다.

언관 언론은 관용적 정치가 이뤄졌던 세종 문종 단종 성종 대에 활발했다.

특히 성종 대에 사림의 중앙정계 진입과 함께 불문언근(不問言根)의 관행이 정착되면서 언로가 더욱 확대됐다.

언관들의 제약 없는 언론을 보장해주기 위해 풍문으로도 탄핵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의원과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 등 4개 언론사를 상대로 총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 사람들을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현역 국회의원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는 것이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소장에서"언론들은 나의 경제활동과 주변 인물들의 재산관계에 대해 집요한 명예훼손행위를 저질러 대통령이 아닌 자연인으로서도 형언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소송 제기가 어제 밤의 한바탕 꿈이기를 바라고싶다.

법치국가에서 대통령이 소송을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소송이유가 너무나 아득해 마치 남의 나라에 살다 온 분 같은 인상을 준다.

대통령에게 자연인 신분이란 것은 본래 없다.

대통령 자리에 앉는 순간 그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그의 명예는 국민의 명예요, 불명예는 국민의 불명예다.

노 대통령은 소장을 서울지법에 낼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야 한다.

그것도 국민전체의 동의를 얻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삶에 짓밟히고, 생계에 목 졸린 국민들의 명예를 구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명예는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 있는 것이지, 법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 언론인식에도 못 따라가는 대통령의 언론관이 오늘 하루를 참담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전직이 변호사였던 것이 내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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