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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검시(檢屍)는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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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변사자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얼마전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이 투신 자살했을때, 경찰은 가족들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체를 부검했다.

법률에 따라 자·타살 여부를 명확하게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수백년전에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검시(檢屍)가 행해졌다.

오늘날 법의학자들이 하는 부검 만큼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조선 세종때인 1438년에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사계절 펴냄, 김호 옮김)'이 출간돼 조선시대 법의학의 지침서로 활용됐다.

세종이 문신 최치운 등에게 명해, 원나라 학자 왕여가 쓴 '무원록'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주석을 달도록 한 책이다.

'억울함을 없게 하라'라는 책 제목에서 보듯 살인사건에 대한 검시방법과 과학적 수사방식이 구체적인 사례별로 들어있어, 진범을 잡거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데 무척 효율적이었다.

역자 김호(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씨는 "살인이라는 다소 비정상적인 상황을 기록한 문서라고는 하지만, 그속에 그려져 있는 사건 현장, 조사 과정, 그리고 관련 인물들의 진술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당시 검시의 핵심은 사체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었다.

사체의 상태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그 안색이 매우 다르고, 이를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적혀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시반(屍斑·시체 피부에 생기는 얼룩점)의 변화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사망시간을 과학적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똑같은 방식이다.

상흔이 위장된 범행을 찾아내는 기법도 상당히 발달했다.

가령 타물(他物)로 구타당해 사망한 경우 보통 상흔이 푸르거나 붉게 나타나지만, 범인이 갯버들나무의 껍질을 상처 부위에 덮어두면 상흔이 짓무르고 상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구타 흔적을 위장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검시관은 반드시 상흔을 손으로 만져 부어오르거나 단단하지 않으면 위장의 흔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약을 먹고 사망한 경우 은비녀를 인후안에 깊이 넣었다가 잠시 후에 꺼내 비녀의 색이 검어지면 중독사한 것으로 판정토록 했다.

이때 시중에 나도는 가짜 은비녀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반드시 이웃이나 사망자의 집에서 은비녀를 구하도록 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또 전체적인 조사과정과 검시 과정에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기준이 나와있는데, 그 철학은 정확성과 엄격성이었다.

검시에 직접 관련돼 있는 하급관리 등에게는 잠시라도 검시관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다짐받고, 이를 철저하게 감독하도록 했다.

하급관리 등이 뇌물에 연루될까 미리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부잣집 여종이 낙태를 위해 독약을 먹다 사망한 경우, 먼저 현장의 주위 사방을 측량한 후 곧바로 사체를 들어 큰 길가에 내놓고 검시해야 한다고 했다.

상흔이 있는지 없는지를 대중들이 모두 보게 해 의혹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숨겨져있던 생활상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지만, 문장은 한문을 직역한 탓인지 딱딱기만 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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