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정일 장군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냈던 김구(金九) 선생의 이름은 세 개다.

어릴 때의 이름이 창암(昌巖)이고, 동학에 입교했을 때의 이름이 창수(昌洙)다.

또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든 중에 호를 백범(白凡)으로, 이름을 김구로 바꿨다.

선생의 스승이었던 해주의 유학 고산림(高山林)은 "창수는 범의 상이니 장차 범의 냄새를 피우고 범의 소리를 내어 천하를 놀라게 할 날이 있을 것"이라 예언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혼인 운은 평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자리에서 함지박 장수의 딸과 우연찮게 정혼했으나 선생이 싫다고 버텨 파혼했다.

두 번째는 스승인 고산림의 딸과 혼례 날짜까지 잡았으나 첫 정혼녀 아버지의 행패로 혼인이 무산됐다.

나이 서른에 과수댁 막내딸과 세 번째 정혼을 했으나 규수가 오랜 감기병으로 사망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 뒤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여동생과 혼인 약속이 있었으나 다른 정혼자가 나타나 또 혼담이 깨졌다.

결국 다섯 번째 약혼으로 부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런 김구 선생은 공산주의자들의 망동을 크게 걱정했다.

"일부 청년들이 제 정신을 잃어 러시아로 조국을 삼고, 레닌을 국부로 삼고 있다"고 개탄했다.

백범일지에는 공산 이념에 몰입된 일부 청년들의 살부회(殺父會)를 언급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에 방해가 되는 아버지를 죽이는 모임이다.

"모모의 자손으로 공산주의에 충실한 나머지 회원들끼리 서로 아비를 바꾸어 죽인다"고 적고 있다.

◆"북한군은 김정일을 옹호하는 500만의 총과 폭탄이므로 그 어떠한 핵 미사일 보다도 무서운 군대다". 96년 북한의 한 표류병사가 남한 수사관에게 남긴 말이다.

그런 섬뜩한 일이 어제 예천 대구U대회장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미녀응원단의 손에 의해. 북한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채 도로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장군님 사진을 이런 곳에 둘 수 있느냐"며 울며 플래카드를 걷어갔다고 한다.

◆같은 민족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화해'의 몰약에 취해 북한 '미녀응원단'의 환영(幻影)만 봐온 게 아닌가 하는 자성을 갖게 한다.

심중은 고사하고 한 껍질 피부까지도 침투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동포애였고 민족애였다.

이런 상대에게 세 번 씩이나 사과를 해가며 대회 참여를 종용하고, 붙잡아 두려한 우리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적 가치를 모르는 이념에는 눈도 귀도 코도 없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무서운 존재다.

어리숙한 남한 민중들에게 북한체제의 실상을 알려준 미녀응원단에게 감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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