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교차로 대표 정병양(55) 변호사

정병양(55) 변호사는 대구교차로 대표이사로 성공한 기업인이자 대구변호사회 제1부회장으로 지역 법조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요즘 또한가지 일을 저지르고(?) 있다.

다름아닌 지난 97년부터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를 법무부 인가 사단법인 대구가정법률상담소로 독립시키는 작업이다.

"사단법인이 되면 1~2년 후엔 법률구조법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법률상담,캠페인 등에서 소송구조, 소송대리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이달 중으로 인가가 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지역 법조계에서 여러모로 '유명한'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역법조계에서 유일하게 '국졸' 변호사이다.

그래서 고졸 변호사 출신인 노 대통령과 닮았다.

왜 학교를 그만 뒀냐고 물었다.

으레 가난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걸로 속단했지만 의외였다.

"고향인 경산에서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마친 것이 정규학력의 전부입니다.

공부는 꽤 잘했지만 틀에 짜여진 학교교육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어요. 자유에 대한 목마름때문에 학교생활을 그만둔 것입니다".

15살나이에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인'이 됐고, 곧장 서울의 형님댁에 짐을 풀었다고 했다.

"첫 서울생활은 남산 국립도서관에서 시작했습니다.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어요.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 돼버린 셈이죠".

군대가기전까지 정부공문서를 등사해주는 회사 등에 다니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졌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책 사는데 투자할만큼 독서를 많이 했다고 했다.

백마부대소속으로 월남전에 자원했다는 말도 의외였다.

그것도 최전선 소총수로. "1971년 군에 입대후 얼마되지 않아 월남전에 참전했죠. 이듬해 8월까지 13개월동안 월남 나트랑 등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였죠. 정말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정 변호사는 전역 후 최소한의 학벌을 가지기 위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방대한 독서량에 기대어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갈 길이 아니어서 이내 접었다고 했다

"긴 방황의 끝인 서른 무렵 사법고시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습니다.

4년의 법대생활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해 홀로서기를 결심했죠".

독학 3년만인 1981년 사시 23회에 당당히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83년 대구에서 변호사를 개업했고, 당시 법조계에선 드물게 부동산 소송에 정열을 쏟았다.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분쟁이 많았죠. 제 1회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땄고, 중개인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법 강의도 많이 했습니다.

이때 얻은 전문지식으로 지금의 대구교차로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정 변호사는 '열린 사고'가 평생 자신을 지탱해온 버팀목이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엔 요즘도 책들이 수북하다.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꼭 3~4시간씩 책을 읽은뒤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대구새마을회 회장으로 선임됐고, 대구시민프로축구단 감사로도 참여중이다.

등산, 스키는 물론 10년째 승마를 즐기고 있다.

정 변호사는 "적을 만드는 선거출마는 취미가 아니며, 영원한 법조인으로 남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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