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남성들 중에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를 더러 봅니다.
한 남자 후배는 장남인데도 처가살이를 하고 있지요. 맞벌이를 하며 애를 장모에게 맡기다가 아예 처갓집 안방을 '접수'했다고 합니다.
혼자 계시는 장모도 적적하지 않아 좋고 아내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하니 자신도 덩달아 편하다고 하더군요. 처가살이를 이렇게 당당히 말하다니 역시 젊은 세대는 다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구요.
당장 집에 가 남편을 슬쩍 떠보았습니다.
"남자 체면이 있지…". 역시 남편의 대답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처갓집에 가서도 밥만 먹고는 한쪽 방에 들어가 책보다 자거나 밖에서 담배만 뻑뻑 피우며 편해하지 않는 남편이 어디 달라지겠습니까.
그런데 처갓집에 있는 걸 불편해 하는 남자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언젠가 처가살이를 하는 30대 회사원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창피하다"며 이름을 가명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서울의 한 방송국 작가에게서 취재를 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도 처가살이하는 남자들이 많을텐데 대구까지 촬영을 오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름까지 가명으로 처리한 그 남자가 TV에 얼굴을 낼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처가와 뒷간은 멀리 할수록 좋다'. 이 옛말은 언제 생긴 걸까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혼인풍습이 바로 처가살이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겁니다.
조선 초기까지는 남자가 결혼해 처가살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대성리학자인 퇴계 이황 가문의 아들, 손자, 종손도 처가에서 기거하는 등 양반 사대부 가문에서도 처가살이를 떳떳하게 생각했습니다.
율곡 이이를 대학자로 기른 신사임당은 결혼해 20년동안 친정에서 딸 셋, 아들 넷을 낳아 키웠고 그 뒤 시집에 가 생활한 것은 불과 10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결혼 후 친정에서 자식을 낳아 어지간히 키운 다음 시집으로 가는 것이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오랜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는 중국에서 들어온 결혼 풍습이라고 하는군요. 16, 17세기 조선 중기 이후부터 시집살이가 대세를 이루게 되고 이때부터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된 것입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마치 조선 초기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처갓집 근처에 살면서 아이를 맡기며 시집보다는 처가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이제 좀더 당당해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처가살이하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위나, 외손주를 보며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 장모 모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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