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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력과 교양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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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수학의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자, "대학입시에 관계없는 것을 무엇 때문에 가르쳐요, 내 자식의 대학 입학을 책임질 겁니까!"라는 항의를 받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는 학생들을 마치 경주마처럼 목표만을 향해 달리게 하고 있다.

초.중.고는 오직 대학 입시를, 대학은 취직을 위한 전문교육에만 매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실시되는 교양교육은 고등학교 수준을 겨우 웃도는 수준의 지식의 나열로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거나 세계관 확립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고시 또한 고급관리 자격시험이지만 전문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고전, 철학, 문학 등의 교양적 요소는 배제되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제도상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는 교양을 접할 기회가 없다.

이로 인해 이 사회에는 전공 분야 이외의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전문바보와 속물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한편, 교양이 출세의 수단으로 치부될 때는 그 내용이 형식화되어 타락한다.

조선시대 많은 독서인들은 유교적 교양을 쌓았으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관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때로는 그것을 당파싸움의 구실로 삼을 때도 있었다.

대학은 인문과학.사회과학 등 과학의 이름으로 학문을 재편성하면서 인문학의 기피현상마저 불러왔다.

과학의 이름으로 다루어지는 인간은 가치문제를 배제한 몰개성적인 생물에 불과하다.

의학의 대상으로서의 햄릿과 돈키호테의 심장은 같고, 경제학에서의 인간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의 구별 없이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존재이며, 법률의 대상으로서의 장발장은 한낱 좀도둑에 불과하다.

교양은 창의력과 관련이 있다.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케임브리지 또는 시카고 대학 등은 교양 교육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그것을 핵심교과(core curriculum)라고 부른다.

이는 모든 창조과정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등장하며 그 마디마디에 풍부한 상상력과 세계관이 개입하므로, 진정한 학문은 풍요로운 인간성, 미적감각, 가치의식 등의 기반 위에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대석학은 기존의 이론을 새로운 시야에서 해석하는데, 큰 업적일수록 통찰력과 함께 철학적인 시야가 곁들여진다.

20세기 과학의 3대 업적인 상대성원리(아인슈타인), 불확정성원리(하이젠베르크), 불완전성정리(괴델)는 세계관에 관련되는 이론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운동의 한계, 궁극적인 물질의 존재에 관한 인식, 그리고 인간 지적능력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이론들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인 핵 에너지 그리고 전자 산업분야를 발전시켰다.

교양은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지식은 아니지만, 상상력을 확장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을 갖게 한다.

따라서 어른의 교양은 어린이의 동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없는 사회는 꿈이 없는 어린이처럼 회색으로 뒤덮여 황폐하다.

국력은 경제력, 군사력만은 아니며 문화적 요소가 큰 몫을 한다.

마치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의 국격이 있는데, 이는 국민적 교양의 수준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정치부패, 부동산투기, 환경오염 등은 분명히 국가적 교양 부재가 원인이다.

가령 기술로서의 건축.토목에는 전통이나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행정가, 경제인이 몰가치한 과학 기술의 성과를 이용할 때 환경문제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기조차 할 것이다.

이렇듯 교양교육을 낭비로 여기는 풍조는 사회 전체 정신풍토를 메마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국격의 수준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배운 사람이기에'라는 지식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 '배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것이 언제부터일까.

'잘살아 보세'의 구호 하나로 살아온 우리는 선진국으로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삶의 보람을 찾게 할 교양교육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오늘날 교양교육은 현대과학의 성과를 반영한 내용을 곁들인 새로운 것으로 재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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