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어느덧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오색 찬란한 나무 잎새들이 소슬바람에 춤을 춘다.
태풍으로 상처받았던 초목들이 단풍잎 하나 하나에도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이 든다.
이제 그들은 올해의 결실을 단풍으로 마감하고 새봄의 새싹의 꿈에 생의 의지를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자연의 푸나무(풀과 나무)들은 사계(四季)의 순리에 따라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과 알찬 열매를 선사하고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그들에게 전하고 있는가. 권력과 물욕에 눈이 멀어서 네 편과 내편으로 갈리어 네 잘못만 탓하는 사회상에 자괴감만 들뿐이다.
우리는 언제 자연의 순리를 터득하여 역리(逆理)로 찌든 인생살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선현(先賢)들에게 그 지혜를 물어보자. 지금처럼 나라 안팎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살았던 율곡(栗谷)은 공론 속에 그 순리가 있음을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공론은 '국민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國是之定)'을 지칭하는데, 위정자가 그에 따라 정치를 펴나갈 때 국민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공론은 삼척동자까지도 그 옳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공론정치는 국민화합과 국론통일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첩경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민의 다수의사를 표현하는 여론이나 권세에 의한 선전이 곧 공론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공론은 국민의 양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반의지를 말하므로, 대중영합적인 여론몰이와 일방적 정치선전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율곡은 이러한 성격을 지닌 공론이 바로 나라의 원기임을 강조하면서 '공론이 조정(朝廷)에 있으면 그 나라가 다스려지고, 민간에 있으면 그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만일 조정에도 민간에도 공론이 없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고 역설하고 있다.
원기 없는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공론을 따르지 않는 나라는 망하고 만다는 것을 경계하는 언명이다.
오늘의 위정자들이 가슴깊이 새겨둘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율곡의 공론관에서, 이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원인이 환히 드러난다.
그것은 정부안에 공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공론에 대한 인지능력과 실천의지를 배양하고 언로가 막히는 장애물을 시급히 제거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위정자의 자기높임, 자만심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권좌에 오르면 자기자신을 국가의 창조자 또는 국가운명의 주관자로 믿게 되는 유혹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神)은 전지전능한 인간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대통령의 외고집과 위세적 배짱이 나라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권력의 교만은 공론을 무시하게 되어 마침내 군림의 정치를 낳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국민의 공론이 중시되는 사회였다면 이 나라의 뿌리를 뒤흔든 '재신임투표'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의 실체도 모르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도 아니며, 그 결과가 국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재신임투표의 문제는 빨리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전한 비판과 창조적 대안을 건의할 수 있는 용감한 참모들이 정부에서 일할 때 공론은 생기를 발한다.
편향된 사고와 맹목적 열정만으로는 위정자를 공론에 따라 바르게 보필할 수도 없고, 복잡한 국사를 풀어나갈 재간도 없게 된다.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의 도움을 받아 산적한 현안 정책들을 시원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인적쇄신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올바른 공론이 정부 내에 있기 위해서는 쓴 소리 단 소리가 여과 없이 통과되어 그것을 새롭게 정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은 민의의 창달이 소중하고 급선무인 때인지라 지난 세월의 원망을 의연하게 풀어 모든 언론을 감싸는 관용과 포용의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손바닥만한 이 나라에 너와 내가 왜 따로 있어야 하는가.
이제 참여정부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선언했던 출범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공론을 떠받드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부정과 비리의 온상인 선거제도를 과감히 혁신하여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노사가 다 함께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영양소를 투여하여 경제를 살리는 일에 일로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김복규 계명대교수 한국정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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