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벌이 지배하고 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이른바 일류대학 출신들이 높은 자리를 독점하면서 폐쇄집단을 만들고, 사회의 주도 세력이 돼 실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사회 주도층에 들어갈 사람들을 '공정하게(?)' 뽑는 장치가 바로 대학 입시이며, 수능 시험이다.
해마다 치러지는 대학 입시가 사회 주도층이 되거나 평생 차별을 받는 등 한 인간의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비관 자살 학생을 낳듯, 극단적으로는 '죽음의 선발 장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시철만 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다.
수험생은 차치하더라도 갖가지 미신이 만발, 영험하다는 사찰이나 성지엔 학부모들의 발길이 붐비고, 수능 상품들이 날개를 단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수능이 평생을 좌우하는 나라, '기러기 아빠'가 자랑스러운 나라이며, 서울 강남의 집값은 수능 성적을 높이기 위해 쏟아 부은 사교육비 덕택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어제 끝난 2004학년도 수능 시험은 '입시 한파'라는 말이 무색해져 다행이었다.
포근한 날씨 때문에 수험생들은 한결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다.
난이도가 지난해와 비슷한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다소 어려운 문제도 많이 출제돼 상위권과 하위권의 점수 차가 뚜렷할 전망이다.
하지만 상위권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최고난이도 문제가 적어 명문대 입시는 치열한 '눈치 경재'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전북 남원의 한 여학생이 1교시 뒤 비관해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안겨줬다.
대구의 한 중증장애인은 편의시설 부족 등에 항의, 시험을 중도에 포기했다.
학원가와 인터넷상에서 출제 예상 지문으로 거론됐던 월북시인 백석의 시와 김용준의 수필 등이 출제돼 사전 유출 논란이 이는가 하면, 서울의 한 한의대생은 고교 동창인 명문대 공대생의 대리시험을 치르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혼란과 비극은 기성세대들의 잣대로 학생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수능과 대입에 인생을 걸도록 부추겨 온 결과가 아닐는지. 요즘처럼 세계로 문이 활짝 열린 세상에서 수능 한판으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청소년들에게 주입시킬 것인지…. 수험생들은 이번 수능에서 좌절을 경험했다면 다시 노력하면 될 일이요, 성취감을 누렸다면 자신의 능력을 더욱 갈고 닦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수능의 결과가 남은 삶의 잣대가 되는 건 아니며, 긴 인생 길에서 겨우 첫 관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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