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사람 59인의 공부 산책'

공부가 '화두'인 시대다.

온 나라가 대입 수능시험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돼 시끌벅적하다.

부모들은 "공부, 공부 좀 해라"란 말로 자녀들을 옥죄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공부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학문.기술을 배우거나 닦는 것을 뜻하는 공부(工夫).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공부는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일 뿐이다.

'옛사람 59인의 공부 산책'(김건우 지음. 도원미디어 펴냄)은 새삼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학문의 즐거움을 주는 조선인들의 공부 이야기'란 부제처럼 이 책은 공부를 스트레스를 주는 골칫덩어리가 아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조선시대 학문에서 일가를 이룬 59인의 공부를 보면 옛 사람들의 공부에는 공통되는 몇가지가 있다.

'차례'와 '체화(體化)' '실천'이 그것이다.

공부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수양 또는 종교적 수행(修行)과 연계돼 있음을 보여준다.

단계를 뛰어넘어 속성으로 해치우고 '자격시험'으로 끝나는 요즘의 공부와는 기본적으로 달랐다.

다산 정약용은 "천자문을 줄줄 외워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익하다"며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16세기 중엽 사림파의 태두인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는 "공부할 때 차례를 뛰어넘어서는 안된다"며 책읽기의 순서와 차례를 강조했다.

예컨대 처음에 '동몽수지''유학자설' 등을 배운 후 '소학' '대학' '논어'…등의 순서로 책을 외운 다음에야 재량에 따라 책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조판서까지 지낸 이식은 자손들에게 '시경'은 100번 읽고, '논어'는 숙독하며 100번 읽고, '중용'과 '대학'은 횟수를 제한하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읽으라고 했다.

세종은 중국 송나라 문장가인 구양수와 소동파의 편지글을 엮은 '구소수간'을 1천100번이나 읽었다

'동사강목'을 쓴 안정복은 "선현의 글을 최소 만번은 읽어야 의미를 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혹자는 암기를 위해 조상들이 이렇게나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암기와는 전혀 달랐다.

즉 책을 매개로 선현과 자신을 일치, 소통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가르침을 몸으로 가져가는 체화를 위해서였다.

실제 정여창은 지리산에서 3년간 경전 연구와 마음수양을 하고, 조광조 역시 천마산 등에 은거하는 등 절이나 산속에서 수행하듯 공부한 이들이 많았다.

퇴계 이황은 "학문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것"에 비유하며 "거울은 본래 맑은 것이지만 먼지와 때가 덮여 있어 닦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옛 선현들은 개인적 공부, 수양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공부를 경세(經世), 곧 세상속에 실천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에 소개된 학자들 상당수는 사화(士禍) 등으로 불행한 말년을 맞았는데 이는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이나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공부가 판을 치는 요즘 현실에서 율곡 이이의 말은 한 번쯤 가슴에 새겨둘 만하다.

"공부를 하려는 노력은 늦춰서도 안되고 조급하게 해서도 안되며,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

만약 그 효과를 빨리 바란다면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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