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7) - 태백산 일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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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태백산 일출산행은 백두대간 종주길 위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종주계획에 따라 가는 것은 아니다. 한달이 한번씩 가는 백두대간 종주산행의 긴 기다림과 지루함을 깨기 위한 일종의 간식이며 별미다.

유영래대장을 축으로 한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팀과 탁무권사장을 축으로 한 '노원문고'팀이 조인트로 함께 출정했다. 총 24명이었다. 근래 태백산 일출은 한국 제1의 장관인데다 신령스런 기를 받을 수 있으며 게다가 자연 눈썰매를 탈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새해 태백산은 온통 왁짜지껄 붐빈다. 일찌감치 기차편 매진은 말하면 잔소리다. 우리일행은 노원문고에서 마련한 전세버스로 갔다. 백두대간팀은 공짜로 간 것이다. 공짜 좋아하다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살다보면 공짜도 있는 법이지,

그런데 천국행은 공짜가 없다는데. 돈이나 빽쓰면 안될까. 천국행은 착한 행동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된데요. 그래서 어느 훌륭한 분이 하신 말씀. 투자시대니까. "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 우리의 조그만 선행은 우리가 지불하는 천국행 유일한 보험료이다"

이번 산행에 아들을 대동했다. 이름은 이원교이고 중학교1년생.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에서 웬만큼 높은 산은 다 다녔다.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 치악산, 월악산, 오대산, 태백산등등. 초등학생출신으로 그렇게 험준한 산을 많이 가 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전문산악인들도 놀라워했을 정도다. 그놈은 산입구에만 도착하면 뻥을 좀 쳐서 날아서 간다고 해서 '백두산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른인 내가 따라가기 헉헉대었으니. 초등학교 6학년에 들어가더니 친구들과 컴퓨터가 좋은지 나를 따라 나서지를 않았다. 장거리 산행은 이번에 그야말로 2년만에 함께 나선 셈이다.

나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조국의 금수강산을 보여주고 또 호연지기를 키우도록 하는게 더욱 값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늘 속으로 "너, 아부지 잘 만난 줄 알아" 라고 의기양양했다. 어느날 구파발에서 바로 위로 치고 나가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를 갔다 내려오니 너무 싱거웠다. 우리는 2시반 정도 산행은 몸풀기 수준이었으니. 하산해서 까마득히 보이는 고양시의 화정에 있는 우리집까지 걸어왔다. 고양시가 그렇게 넓은줄 처음 알았다. 산과 농가도 있는 전원도시였다.

북한산자락밑에서 출발해서 구파발, 지축, 삼송, 원당, 화정까지 아스팔트길을 따라 3,4시간 가량이 걸렸다. 아스팔트길은 흙길과는 달리 충격 때문에 다리가 더 뻐근하고 쑤셨다. 이때 우리 아들 왈 " 아부지, 아부지 잘못 만나 고생만 실컷 하네" 라고 푸념이다. 이 짜식이. 세월이 흘러봐라, 나 같은 아부지 있나. 겉으로는 씩 웃고 속으로 "니 나이에 그렇게 좋은 산을 거의 다 가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평생 좋은 추억이 될끼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집 행복만들기 비법을 소개한다. 순전히 돈안드는 방법이다. 서민들은 애용하시라. 가령 KBS 인기프로인 '개그콘서트'를 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 본다. 요즈 '개그콘서트'가 내홍에 빠졌더라구요. 우리 가족의 행복촉매제라는 것을 모르는구만. 우리 가족에게는 정치보다도 직장보다도 더 기쁨을 주고 있다. 자긍심을 갖고 더 열심히 더 잘하도록. "개그콘서트를 한국제1의 행복약 제조공장으로 임명합니다"

한시간 가량 보는 동안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 가족은 서로 껴안고 폴짝폴짝 뛸 때도 있고 각자 배를 잡고 뒤집어진다. 가족끼리 몸을 서로 비빌 때는 체온을 느낀다. 아니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정다운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효과면에서 수십만원짜리 외식보다도 훨씬 더 낫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왕회장님시절 자식들이 자주 모여 식사를 해도 그렇게 썰렁하다면서요. 돈들여 영화관을 늘 찾는 것보다 좋은 비디오 한편 빌려 온가족이 편안한 자세로 보는게 더 좋다. 서민들도 다 살 궁리가 있다. 아니 가난해도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불쌍하게 살 줄 알았지. 세상이 너거들 마음대로 될 줄 알았지. 늘 얘기하지만 부자들만 행복하면 세상 벌써 무너졌지. 하느님이 인간세상을 참 잘 만드셨다고 저번에 얘기했죠. 익지서(지혜를 이롭게 하는 책)에 인상적인 가훈이 나온다.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에 살아도 평온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을 먹어도 향기롭다"

천국과 극락을 연구한 수많은 도인들과 철학자, 영적스승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한 사람보다 더 헐벗게 살았다. 성철스님은 너덜너덜한 누더기 장삼 한벌밖에 없었다. 부자처럼 산 사람은 단 한명도, 절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19세기 미국 당대 최고의 자연예찬서이며 문명비판서인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보면 이들의 행동을 '자발적 빈곤'으로 표현했다. 이책에 따르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지. 간단 요약하면 도를 통한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고 마음이 넓어지려면 물질에서 초월해야 되니까. 겉은 가난했으나 속은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롭고 자유로웠다. 결론을 잘 내려야 폼이 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버리는 것이 곧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나는 과격분자가 되었다. 불순분자내지 위험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부자들이 죄악이라는 것. 오해할라. 공산주의자라고. 그것이 아닙니다. 돈많은 것보다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질을 풍부하게 쓰는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 자연 부자들이 많죠. 물질을 많이 쓰면 자원을 많이 쓰는 것이고 이는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 다소 무리가 있지만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우리 집은 소파나 침대, 오디어, 비디어, TV, 식탁 꼭 필요한 거만 있다.세간살이가 단출하다. 양복도 계절별 두벌씩이고 옷도 별로 없다. 나의 승용차도 오랜되었지만 바꾸지 않는다. 멀쩡한 물건을 왜 바꾸고 버리나. 나는 근래 마누라한테 식사때는 김치,김이외에 찌게든 국이든 무침이든, 조림이든 단 하나만 하라고 한다. 만드는 사람 편하고. 진수성찬은 바보가 하는 짓이다.

인디언의 생활지침은 21세기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교훈을 준다. "쓸수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를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 그대로 산 그들이 오늘의 우리의 우상이 되어야한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소비를 해주어야 한다, 즉 소비가 미덕이다, 언뜻 들으면 맞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틀렸다. 그 논리대로 살아오니 환경파괴니, 인류생존의 위협이니 맨날 '이모양 이꼴'이 되었지.

순간과 현실에 매몰되면 큰 흐름이 보이지않는다. 소비가 미덕인 사람은 그렇게 살고 아닌 사람은 다르게 살고 알아서 살자. 나는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인디언은 아시아에서 넘어간 종족이니 우리 조상들의 후예들이다. 결국 나와 같은 피다. 그러니 느낌도 같지. 미국사람들하고 쬐금 다를끼다.

이야기가 딴 길로 갔다. 가족얘기 하다가. 한번은 초등학교 1년인 우리 딸에게 "아빠 없으면 어떻게 될까" 라고 물으니 "헛소리할 사람 없어서 매우 쓸쓸하겠지"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집에서는 가급적 장난을 걸며 껴안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딸에게는 "옛날 얘기해줄께"라면서 흥부는 먹여살릴 능력도 없이 자식만 많이 낳아 본인고생, 자식고생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백설공주는 공주병에 걸려 툭하면 난장이들에게 도움을 바란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또 심청이는 바다에 뛰어내려 빠져죽는 바람에 심청전이 끝났다고 하기도 하고 춘향이는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죽어버렸다고 하기도 하고, 소위 패러디로 바꾸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린이 정서에 맞지않게 너무 심하게 얘기했나.

(참조 1, 개화기때 신소설로 유명한 이해조는 "춘향전은 음탕 교과서요, 심청전은 처량 교과서"라면서 "청소년이 이런 소설을 읽고 자란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느냐"며 큰 걱정을 했다고 하네요. 걱정도 팔자다.나도 청소년 시절에 그 책들을 읽었지만 악영향을 받은 적이 별로 인데, 하이튼 인간들 가운데 별의별 인간들이 많아요, 입이 열렸다고 해서)

(참조 2, 어떤 분은 심청전과 춘향전은 '효'와 '정조'라는 유교 이데올르기를 강요하는 허구라고 비판하고 있지요. '심청이 콤플렉스'와 '춘향이 컴플렉스')

그러면 딸은 "그게 아니라니까"라며 "아빠 헛소리좀 하지마라"고 오히려 타박이다. 자식들에게 군기를 잡고 무게를 잡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부모자식으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행복하게 잘 지내야지. 장애인자식이라도 괜찮지. 자식이면. 자식들이 건강하고 밝게, 쾌활하게, 순수하게 자라기를 원한다. 옛날 어떤 광고에 " 공부는 못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카피가 있었다. 지금도 유효하다.

어쨌든 큰바위얼굴과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나를 필요로 한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내 딸도 북한산에 가끔 데려갔는데 잘 타더라구요. 마누라만 빼면 환상적인 등산가족이 될 것같은데. 이날 태백산에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해서 달래느라고 곤욕을 치뤘다. 등산장비도 없고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안데리고 갔는데 갔다 올 때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겨우 달랬다.

제가요. '개그콘서트'에서 배운 것 하나만 가르쳐 드릴께요. 술중에 가장 맛있는 술은 ? 입술이구요. 빵중에 가장 맛있는 빵은 쭈쭈빵빵이래요 (우리 아들은 나중에 쭈쭈빵빵 여자하고 결혼한대요. 짜식, 커봐라. 살아봐라. 마누라감으로는 다 부질없다). 그리고 올해는 양띠해. 양중에 가장 이쁜 양은?, 가슴 큰 탤랜트 정양이래요. 킬킬

그런데 '개그콘서트'를 보다 보면 집얘들이 보기 민망한 내용도 있거든요. 어차피 배울 것 그냥 넘어가요. 너무 방심인가. 초등학교 1년인 딸은 좀 이상한 내용이 나오면 "야질"이라며 고개를 돌리며 부끄러워한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은 공부는 그럭 저럭인데 컴퓨터실력이 대단하다. 자격증은 반에서 최다보유자다. 따라서 그는 포로노는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안본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친구들은 다 본다고 하면서. 아들은 '개그콘서트'에서 진한 얘기가 나오면 소리지르고 난리다.

우리세대와는 천양지차다. 저런 내용을 부모,자식이 같이 듣고 앉았으니. 콩가루집안이구먼. 질문하나, 콩가루는 영양만점식품인데 왜 콩가루집안은 개판으로 정반대로 해석하죠. 심상준총무가 지인이 개발한 콩가루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일을 돕고 있는데 먹어보니 일품이더라구요. 즉석 순두부국도 만들고 라면 끓일때 넣으니 기름끼가 싹 빠지고 히트치겠더라구요. 생산,판매할 돈이 적데요. 미국,일본등 외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고 있데요. 어쨌든 야한 코미디내용도 온가족이 함께 보는 집구석을 거느린 집안가장, 이헌태인 내가 한심한지, 세상이 한심한지. 우야노.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는데.

나는 '개그콘서트'를 보고 창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예전 강성범이 '연변총각'로 한창 인기를 끌때다. 강씨의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옌벤에는 있잖습니까. 용들이 많이 삽네다. 한 천년은 먹어야 겨우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어요. 한창 팔팔하고 싱싱한 용은 한 2천년정도 되어야합네다. 그런데 용을 잡을때는 비행기 4대가 떠서 포위해서 잡습네다. 용고기 회 먹어봤습네까. 아주 왔땁니다. 간혹 먹다가 여의주도 나옵네다. 그것 내다 팔면은 강남 아파트 4채는 살수있습네다. 벼락부자됩네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해서 주위사람들이 깔깔 웃곤했죠. 제가 백두대간 종주기에 잘 쓰는 '누구누구를 뭐로 임명합니다'도 '개그콘서트'를 보고서 빌려온 표현입네다.

저거는 너무 심하더구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개그콘서트'에서는 "내 아를 낳아도오"라고 하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의 '초고속 사랑'을 보는듯하군요. 사랑하면 바로 애가 나오나요. 50년전만해도 무지.무식한 동포들중에서 진짜로 사랑만 하면 얘를 낳는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어요. 실제로 제가 어릴 때 잡지책을 보니 허벅지만 비비면 애를 낳는 줄 알고 왜 임신이 안되느냐고 고민한 부부상담을 본적이 있어요. 그때 그부부는 요즘 뭐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알고나서 더 밝히지는 않는 지.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지요.

그런데 요즘 정자와 난자 결합없이 인간이 나오는 '복제인간' 아시죠. 진짜인지 사기극인지는 몰라도 이것때문에 온 세상을 발칵뒤집어졌는데. 사랑에서 바로 출산으로 이어지니까 혹시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사상에 물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말세야. 또 말세여. 나라에는 여,야 정치권이 다 필요하니까.

그런데 백두대간 종주기에 "내 아를 낳아도오"가 뭐냐. 질 떨어지게. 김밥옆구리 터지는 소리할래. 그런데요. '만두부인 옆구리 터졌네'도 있고. 옆구리 터졌다는 말 있잖아요. 그거 함부로 쓰지 마세요. 부처님이 사실 옆구리에서 터져 나왔거든요. 진짜에요. 부처님을 낳으신 마야데비 왕비의 태몽과 부처님 탄생 과정 아시죠.

왕비가 어느 날 꿈에서 하얀 코끼리가 자기 옆구리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임신했다가 10달 후에 부처님이 옆구리에서 나왔죠. 양수도 없었고 상처도 전혀 없었데요. 왕부부는 금욕생활을 했기 때문에 임신할 이유도 없고. 이제 김밥옆구리 터진얘기 그런말 하지 마세요. 부처님 노합니다. 예수님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듯이,

석가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시면서 하신 행동과 말씀 아시죠.'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크게 외치시면서 사방으로 일곱걸음씩 가시면서 한말씀씩 하셨죠. 제일 유명한 말은 서쪽으로 가면서 "나는 지상에서 최장자이며 최승자이다. 이 태어남을 윤회않는 마지막 삶이 되게 하리라. 내 오직 이번 삶동안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신들은 인간의 몸을 가진 여자의 은밀한 그곳으로 태어나는게 어색한 가봐요.사실 좀 이상하죠. 어떤 책을 보면 글쎄, 노자가 그 어머니가 임신한 지 81년만에 왼쪽 옆구리를 가르고 태어났다고 하네요. 광신적 도가사람들이 신비화한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거든요. 참 뭐가 뭔지.

가족얘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나와 아들은 오늘 토요일 오후 8시반쯤 집을 나서 1시간 3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멀고도 먼 노원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약간 걸어 노원문고로 향하던 중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 노원구보건소가 붙힌 " 절주하는 용기, 당신의 능력입니다"라는 긴 플래카드를 봤다. 눈이 번쩍 떴다. 지난 지리산산행때도 하루전날 우리일행이 일박할 벽소령의 이름을 단 식당홍보전단지를 받아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절주는 내가 올해 목표로 삼은 게 아닌가.

가는 곳마다 나와 관계되다니. 서울시와 서울시민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아닌가. 정신병자아냐. 아니면 그만이구. 그래야 나의 의지가 더 굳어지죠. '자아도취를 통한 목표달성법'이라고나 할까. 제 이름이 간혹 히딩크가 아니고 이딩크로 바뀌는 것 아시죠.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노원구보건소가 요구한 대로 저의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실 절주캠페인은 보기 힘들다. 주로 교통질서 및 기초질서 준수, 효도, 금연 대충 이런 것들인데. 노원구가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줄주정꾼들이 많은 지역인가. 뭐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지. 하기야 상계,하계,중계니 계곡이 많으니 풍류와 술이 많겠지 뭐. 원래 계곡주변에 술집이 많잖수. 그냥 넘어갈께요. 노원구보건소 파이팅.

작년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하면서 금연을 실천했다. 단번에 끊었다. 내가 자랑스럽다. 아니다. 못끊는 놈이 문제지. 그런데 담배를 끊다보니 술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종주 오다가다가 마시는 술은 너무 환상적이기 때문에 끊을 수는 없고 또 영업상 꼭 마실 때도 있어야하니, 그래서 절주를 생각했다. 절주란 쓸데없이 안마시는 것이다. 술이 술을 마신다든지 안마셔도 되는 자리에서 사명감을 띤 것처럼 내가 먼저 분위기를 띄우지는 안겠다는 결심이다. 지난 15년동안 술을 무던히 마셨다. 주로 폭탄주. 인생이 폭탄 맞아 깨지는 줄도 모르고.

술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 시작이구먼. 나는 늘 폭탄주를 마실 때 거품을 빼서 마신다. 술도 거품을 빼야 한다. 요즘 외환위기이후 경제의 거품을 빼자고 난리다. 인생의 거품도 빼야 한다. 내가 볼때는 인생의 거품에는 술때문이 많다. 과음하면 가무가 생각나고 실수를 하게되고 정신이 혼미하고 몸이 축나고 생활이 알차지 못하고 등등. '과음= 패가망신' 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개인 주정사를 되돌아보니까. 한심했다. 절주하기로 했다. 인생의 거품을 뺀다는 것은 생각의 거품,욕심의 거품을 뺀다는 것이다. 머리에 나쁘고 헛된 생각을 쫓아내고 맑고 깨끗한 생각으로 갈아 채워 넣어야한다.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다고 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마찬가지. 말이 되는가 모르겠는데 살을 뼈처럼 줄이면 당연 좋을 듯싶다. 그 옛날 성현이나 도인들이 살쪘다는 애기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금욕생활 하느라 비싹골았다. 노자왈 " 성인은 먹고 살게는 하지만 감각을 만족케 하지 않으니 쾌락과 탐욕을 버리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택하느리라"

올해는 몸의 거품을 빼는 해, 쉽게 얘기해서 '살 빼는 해'로 만들어야겠다. 살빼더라도 단식이나 다이어트의 차원이 아니라 소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서 살을 빼야겠다는 것이다. 과음, 과식은 탐욕과 허영의 과시라고 생각되니까요. 야, 이헌태 절주갖고 '거품론' 논리전개가 대단하다. 백두대간종주하면서 아주 철이 들어가고 있구만. 내가 생각해도 인생이 변하고 있구먼. 잘하고 있어. 그런데 이헌태, 뼈가 너무 비게되면 골다공증으로 고생할 걸. 그렇구나. 뼈바로앞까지만 빼야겠구만. 뼈만 있으면 그것은 사망이니까.

썰 푸는 김에 진도 조금 더 나아갈게요. 인간은 창조주가 만들었건, 자연이 만들었건, 조상 과 부모님이 만들었건, 피조물이다. 희한하고 신비로운 것은 인간은 훌륭한 조각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 두 부분으로 나뉘져 있다고 볼 때 스스로 다양한 형태로 창조할 수 있다. 인간은 행위와 관련, 이헌태식 분류로 나눠본다. 1) 할수 없는게 있고 2) 할수 있는게 있다. 할 수 있는 것중에 3) 하기 쉬운게 있고 4)하기 어려운게 있다. 또 5)해야만하는게 있고 6)해서는 안되는게 있다. 7)할 필요가 있는게 있고 8)할 필요가 없는게 있다. 이헌태 말도 잘 만든다. 그런데 영혼과 육체의 개조는 할 수는 있지만 힘들고, 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말장난하지말라. 쉽게 얘기해서 부단하게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혼은 영혼대로 좋게 나쁘게, 육체는 육체대로 건강하고 나쁘게 자유자재로 만들수 있다. 나는 앞으로 영혼은 맑고 깨끗하게 육체는 건강하게 만들기로 작정했다. 담배도 끊고 술도 절제하고 마음도 비우고 겸허하게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피조물이면서도 가장 창조물인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처님말씀, "지혜로운 자는 정신을 중시하고 어리석은 자는 육신을 중시한다"

이헌태 요즘 날이 갈수록 생각의 깊이가 더해져. 놀랍다. 백두대간 종주시작하더니 완전 달라지고 있구먼. 그런가요. 머리쓱쓱. 그런데 이헌태, 좋은 말만 하면 뭐해. 실천을 해야지. 좌선한다고 부처가 되고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되나. 니는 환골탈태해야할 걸. 알겠습니다. 열심히 마음을 닦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야반을 틈타 도주한게 아니라 새벽 3시 30분쯤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태백산 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차고 맑은 공기가 내 심폐에 차고 들어왔다. 누가 그랬지. 맑고 순수한 아침 공기는 맑은 물과 함께 만병통치약, 보약이라고.

요즘 산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전 조상들이 겨울난방을 위한 땔감용 산이 아닙니다. 휴양림 보급은 확산되고 있고 깊은 산골 물과 공기까지 파는 세상이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중국에는 비즈니스장소로 활용된다고 한다. 비즈니스 상담이나 회의를 산 근처에서 한 후 뒷풀이로 산행을 한다는 것. 황산등 중국의 명산에는 정장에 구두차림의 등산객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해요. 유명산에는 케이블카도 있고 시멘트 계단이거든요. 자연을 감상하는 비즈니스 너무 괜찮지 않아요. 진짜에요. 신문기사에 났어요. '세계 제1의 장사꾼',비단이 장사 왕서방, 누군가 '상인종''상인족'이라고 불렀던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필리핀등 동남아시아도 중국사람들이 상권을 완전 장악했대요. 지금 욱일승천하는 중국이 공산당이 만든 중국이 아닙니다. 이들 거대한 화교상권이 만들어낸 작품이죠. 우리도 한국인상권, '한상'을 만들고 있다네요. 어느 세월에. 또 병원에서 환자치료방법으로도 등산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이것도 신문기사에서 봤어요.

보너스, 상인이나 상업이란 말이 원래 상(商)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무왕이 상나라(흔히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웠는데 이때 나라를 잃은 상나라 사람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장돌뱅이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상인(商人)'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그런 슬픈 사연이 있을 줄이야. 지금은 장사해서 돈 본 사람들이 최고로 대접받는데, '돈 세상'이 되었죠. 머리가 뱅글뱅글 돌게하는 세상도 되는 구만.

하기야 내가 전에 한창 산에 자주 다닐 때 몸담았던 산죽산악회 일행중, 한 60대 노인분은 산에 다니고부터 중풍이 말끔히 나았다고 하니 등산만큼 좋은 건강법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은 도인들이나 철학자들의 도닦는 장소로 늘 이용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누가 그랬던가. "산에는 예수가 있고 부처가 있고 노자가 공자가 있고…. 산에는 진리가 있음이라". 따라서 산은 종교의, 상술의 , 의술의 , 학술과 도술의, 예술의(산수화의 배경) 한 방편이 되었구나. 맨날 싸우는 정치인들도 땀흘리고 자연의 순수함을 맛본후, 산정상에서 머리를 맞대면 훨썬 마음을 비우고 국민에게 도움되는 결론을 내릴텐데. 앞으로 중요한 정치쟁점은 큰산꼭대기에서 토론하고 결론을 냅시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죠.산이 정치의 한 방편이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하여튼 산은 만물의 총집합체구먼. 산은 참 대단하다. 이헌태 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의미를 잘 갖다 붙이는데. 그거야 제 짱구가 자꾸 그런쪽에 발달해서요. 죄송합니다.

차안에서 한시간 가량 대기하다가 동트기전 오전 4시반쯤 컵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때운뒤 바로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에서 산허리를 치고 계속 올라가 약간 힘들었지만 1시간가량 뒤부터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정상인 천제단까지 대략 2시 20분쯤 걸렸다. 이정도 시간이면 쉬운코스다.

태백산 산행길은 시종 눈길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반짝이고 있었고 땅에는 렌턴불빛에 눈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고 따라서 내마음도 행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천지인(天地人), 삼합(三 合)의 예술이었다.

유일사 입구매표소에서 한시간쯤 올라가다보니 유일사 바로 위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산에 무슨 교통체증일까 생각할지 모르겠으니. 진짜로 한 10분쯤 기다렸다. 태백산등산을 위해 네번쯤 온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체증을 빚은 것은 처음이다. 태백산일출의 소문이 크게 났다는 것인데, 큰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산에 많이 오면 마음도 비우고 그렇게 되면 세상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중고등학생 모두를 백두대간 종주시키는 법을 제정하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백두대간이 훼손되지나 않을 지. 우리국토가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너무 되었다. 나는 역시 생각이 짧은 놈이라고 한탄했다. 더 폭넓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백두대간은 착한 일을 하거나 자연보호운동에 적극 앞장 선 사람들중에서 선발해서 보내야한다고 수정제의할 작정이다. 그러면 이헌태, 니는 여기서 중단해야겠네. 그 법이 나오기전에 빨리 갔다와야지. 산에 그렇게 사람이 몰리니 근심도 많이 되었다. 하여튼 산을 사랑합시다. 자연을 사랑합시다. 얼렁뚱땅 넘어가야지.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생존과 직결되어있다고 본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인간의 삶이 파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국민의 4대의무외에 환경보호의 의무를 추가할 것을 공식으로 제안한다. 환경세를 부가하고 환경파수꾼을 창설하고 환경파괴범에 대해서는 극형을 선고해야 한다. 자기생명 귀중하면 남의생명 귀중한줄 알아야지.여기서 남이라 하면 동물,식물,광물, 흙, 바람, 천둥 잉.인디언들은 이들에게도 위대한 정령이 있다고 보는가 봐요.대화를 나눈데요

논리는 단순하다. 나라가 있어야 가정이 있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가 있다면 지구가 있어야 나라와 가정이 있지. 따라서 지구를 구하려면 환경이 보존되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지구는 끝이다. 그러면 국가도 가정도 끝이다. 논리가 너무 완벽하다. 국가를 지구차원까지 범위를 넓히다니. 이헌태, 스케일이 동네에서 지구로 갑자기 커지면 폭발되어 공중분해되지. 이판사판이다. 모르겠다. 말이라도 번드르하게 잘해야지.

서양철학자 김용석 로마그레고리안대학 교수가 동양철학자 이승환 고려대교수와의 대담(동책이름: 동양과 서양의 127일간 이메일을 주고받다)에서 한 주장이 흥미롭다. 그는 자연을 지구자연이 아니라 우주자연으로, 환경도 지구환경이 아니라 우주환경으로 넓혀 볼 것을 제안했다. 그의 생각의 전제는 첫째 지구는 유기적 자생성을 가진 시스템이다. 즉 현재의 생산소지폐기의 악순환으로 가면 지구는 자생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이다.지구가 살기위해서라도.

두번째는 인간은 지구생명체가운데 유일하게 자생시스템에서 이탈하는 존재이다. 이제 적극 벗어나 탈지구화하자는 것이다. 지구밖의 행성이나 다른 별로의 이주는 어처구니 없고 불가능한 일로 말하는 것 같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수십년 후에 될지, 수백년후에 될지. 과거에도 불가능한 일들이 실현됐기때문. 탈지구화의 시대에는 민족,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이 과제가 될 것이고 이런 차원에서 지구보호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21세기 우주의 시대에 맞는 지구환경보호론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쏠깃한 주장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한 인디언의 메시지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가하는 것이 곧 자기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인디언들의 얘기가 나온 김에 자연보호, 생명존중이 뭔가를 보여주는 인디언의 십계명을 소개해보면서 일단락하겠다. 1.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2.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3.위대한 정령에게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4.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하라 5.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두라 6.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7.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정령에게 감사하라 8.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9.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 10.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 구구절절 주옥 같은 말씀이다. 인디언은 세계환경보호대상을 받아야 한다. 각 부족의 인디언추장을 미국을 비롯 전세계 각국으로 파견되어 환경부장관에 임명해야한다고 보는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대중대통령연설스타일)

산행에 나선 지 1시간 반가량 올라가니 그 유명한 태백산 주목군락지가 나왔다. 태백산지역 주목은 수량이 3928본이고 나이가 30년짜리부터 920년짜리까지 평균 200년이라고 한다. '악' 소리가 난다. 식물을 우습게 봤더니 인간보다 더 오래 사네. 미동도 못해 답답하겠지만 오랜세월, 사시사철 자연을 구경하고 느낄 수 있으니 인간보다 더 낫네. 식물들 우습게 보면 큰일나요. 숲이 파괴되고 자연이 파괴되니. 작년 영동지역 대홍수 때 봤죠. 아주 쓸어버리잖아요. 그것은 경고예요, 경고. 본격 화내면 한국을 지도에서 쓸어 버려.

야. 왜 하필, 한국이야. 죄송합니다. 그러면 인간쓰레기들 쓸어버려. 잘 했어. 최근 한 스님도 작년 극심했던 동해안 수재는 자연파괴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말했다. 인디언책에서 인용, " 머지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크게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열병을 앓거나 먹은 것을 토하는 것과 같으며 그대들은 신체가 스스로를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주목군락지 도중에 산림청 태백국유림관리소의 "숲은 꿈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라는 팻말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숲이 살면 인간이 살고 숲이 죽으면 인간이 죽으니까.

새벽 6시반쯤 사위가 밝아졌다. 산윗부분에 이르니 주목군락이 시작되면서 동쪽 하늘 저편에 황홀한 광경이 보였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수평선도 아니고 지평선도 아니고, 구름 저편, 하늘 저편에 저평선인가, 운평선인가, 천평선인가 모르겠지만 일직선상에 물감재질이 아니라 파스텔재질의 선홍색 기운이 띠처럼 펼쳐져 있었다. 저 하늘 건너편에는 누가 살까. 지금 해를 위로 밀어내기위해 엎드리며 대기하고 있을까. 해만들고 해돋이할 힘은 없어도 실컷 구경이나 해야지.해해. 간사하기는.

사진기를 꺼내고 예술작품을 만드느라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사진작가처럼 굴었다. 나와 아들도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쉴틈없이 행군을 계속했다. 드디어 태백산 장군봉(1566미터)에 올랐다. 30분가량 벌벌 떨면서 기다렸다. 세찬 바람이 불면서 발이 시려워 왔다. 그동안 선홍색의 띠모양의 붉은 기운이 1시간가량 떠있었다. 영웅을 맞으려는 준비가 대단했다. 유대장을 비롯한 주력군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천제단(1560미터)에서 일출을 봤다고 한다.

아침 7시 30분쯤 일자띠의 붉은 색깔이 다소 엷어지다가 갑자기 다시 선홍색으로 바뀌면서 그때부터 붉은 태양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주에 생명이 잉태되는 흥분을 자아냈다. 3백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새해의 꿈을 빌었다.

붉은 해가 서서히 뜨면서 전구처럼 빛을 발하는데. 저 찬란한 광채, 너무 눈부셔 도저히 눈을 뜨고 볼수가 없었다. 저멀리 파도처럼 겹겹이 일렁하는 산악들 저편에 신비스런 흰안개가 깔려있고 그 하늘저편에 붉은 띠가 깔려있고 그 한가운데에 붉은 해가 장엄하게 솟는 모습. 장관, 장관, 장관. 경탄,경탄, 경탄. 경외와 신비 그자체였다. 자연은 위대했다. 붉은 해는 자연의 왕이다.해도 위대했다. 자연이 깨어나고 산이 깨어나고 있었다. 인도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의 경전에 따르면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고 말했다. 인디언들에게 해돋이 의식이 있다. 이것은 나쁜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나쁜 기운아 불타서 사라져라.

나는 태백산 일출을 여러 번 봤다. 또 지리산 청왕봉일출, 설악산 대청봉일출, 동해일출등 우리나라 명승지 일출도 다봤다. 오늘 이 일출은 내가 태어나서 본 최고의 일출이었다. 혹시 내가 전에 본 아름다운 일출을 까먹어버린 기억상실증환자인가. 아닐 것이다. 주위에서 도 온통 "생애최고의 일출이야"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것으로 봐서 내 판단도 맞는 것같다.

해는 만화경내지 영화의 필름처럼 장면이 계속 바뀌었다. 선홍색 해에서 황금색 해로 결국 하얀색 해로 얼굴이 달라졌다. 며칠전 행주산성꼭대기에서 새해맞이를 했다. 민족의 젓줄 한강을 밑에 깔고 뜨는 해의 모습이 이날 태백산 해돋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태백산의 정기를 받고 뜨는 해와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해는 같은 해지만 질이 근본이 달랐다. 태백산은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스런 장소다. 계룡산과 태백산, 마니산등이 기가 서린 산으로 알려져 있다. 태백산에는 예전에는 무당도 많았고 도인들도 많았단다.

해는 같은 해인데 어떻게 태백산해만 기가 막히냐. 참 이상하다. 그러니 인파가 많이 몰리지. 궁금한 것도 많아. 중요한 사실하나. 해는 가난한 사람의 은은한 창에도 부자들의 화려한 침실에도,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사람에게도 똑같이 비추거든. 동해안이건, 명산이건, 허름한 논두렁이건, 또 무슨 얘기할려고. 결론만 내. 양띠 신년, 행주산성일출, 태백산일출 모두 감동,감격,흥분이었기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영광과 행운이 골고루 가득하기를. 무한경쟁시대로 촉발된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누가 그랬다. 세상이 바뀔려면 확 바뀐다. 의식과 제도와 삶이. 인간은 매우 지혜로우니까.

무감각하기로 정평이 난 아들도 "아빠 일출장면이 너무 좋았어요"라며 연신 감탄을 한다.어릴 때 데리고 다닐 때는 예술같은 풍광을 지난 산정상에서도 그런 얘기 안하더니 이제는 니도 자연감상에 대해 쬐금 눈뜨기 시작했구만. 이제 짐승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증거지.산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나중에 실컷 가르쳐 놓았더니 커서 나한테 "아부지, 저 오지산골에서 농사지으면서 도나 닦을랍니다"고 하면 어쩌나. 알아서 살아라. 니인생 니가 살지. 그러나 당당하게 , 착하게 살아라. 사실 니하고 너거 엄마하고 너거 동생 없으면 나도 초나라왕이 높은 관직을 제의하자 거절하면서 말한 장자처럼 "나는 세상의 티끌 속에서 자유로이 살겠소" 라며 외치고 싶다. 먹여살려야할 가족들이 있으니. 발목잡혀서.에고에고

태백산 정상에 올라서서 보니, 동해에는 일출이 감동을 안겨주었지만 서쪽에서 발아래 운해로 깔려있었다. 바다처럼 산정상만 빼고 온통 뒤덮고 정상부분을 철썩철썩 때리면서 유유자적하는 운해가 너무 멋졌다. 중국 황산의 운해도 이만 할려나. 천제단으로 내려오면서 '좌일출, 우운해'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김영삼 총재시절 '좌동영 우형우', 김대중대통령시절 '좌노갑 우화갑'의 양갑의 시대를 거쳤다. 노무현대통령시대는 '좌희정 우광재'(386세대측근인 안희정, 이광재를 지칭) 라는데. 나는 딴 것보다는 '좌중국 우일본'의 동북아 중심시대 , '좌원교 우승은'(아들,딸 이름)의 가족행복시대를 꿈꾸고 있는데. 잘 될라는가. 잉, 우리 마누라 이름이 없네. 맞아 죽을라. 정정하겠습니다. '좌원교, 중영주,우승은'. 모양 다 망치네. 가운데 아줌마는 좀 빠져. 쓸데없이 끼기는 왜 끼어. 아니에요. 좌가 뭐가 필요하고 우가 뭐가 필요해. 당신이 최고야. 자식은 또 놓으면 되지. 잉. 자식들이 또 난리네. 에라 모르겠다. 넘어가자.

봉화대처럼 자연석을 쌓아올려 만든 천제단안 '한배검'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두번했다. 우리일행은 운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천제단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이전에 찾았을 때의 살을 에는 바람은 아니었다. 태백산 정상의 바람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칼바람인데. 오늘은 이상하다.일출도 장관이고 바람도 주눅이 들고 우리일행을 알아모셨다는 것인데. 자연도 알아볼 사람은 알아봐야지.

하산을 시작했다. 천재단에서 시작되는 급경사의 눈길을 조심조심 내려와서 문수봉(1517미터)바로 밑에서 꺽어 당골과 석탄박물관 방향으로 향했다. 이 하산길은 자연 눈썰매로 쥑인다. 이미 태백산에 올 때 집근처 건재상에서 두꺼운 비닐 1미터짜리를 5개 준비했다. 7천5백원들여서. 나한개 아들한개, 인심써서 나머지 일행몫 3개까지. 우리꺼만 달랑 갖고 올수 없잖수. 자연눈썰매에는 농약비닐포대가 최고다. 이제는 태백산에 가면 농약비닐포대나 장판비닐을 갖고 올라가는 사람을 많이 만나다.

이날 비닐을 타고 내려오는 하산길은 너무 신나고 재미났다. 눈썰매장에 온 것 같다. 구르기도 하고 나무에 받칠 뻔하기도 하고. 심상준선배는 신나게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엉덩이가 쾅 부딪히는 대형사고가 났다. 부축을 받아 겨우 내려왔다. 병원에서 별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지만 백두대간팀의 총무라서 큰 액땜을 했다고 모두들 가슴을 쓸었다. 눈이 더 내렸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나는 어린얘처럼 즐겁게 내려왔다. 눈썰매를 타니 40대 어른도 얘들이 된다. 동심으로 돌아간다. "이헌태, 너를 7살 어린이로 임명합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왈, " 대인(大 人)이란 어린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않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인이네. 이헌태 정신차려.

그런데 제발 어린이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7살 어린이로 좀 임명해줘. 40대되니 삶이 고달프다. 제발 좀. 하여튼 아들도 중학생이지만 자연썰매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다. 짜식, 아버지는 잘 만나 가지고.

오전 10시 반쯤 넘어 당골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6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대략 10킬로미터거리였다. 당골 광장에는 태백눈축제준비차 조각을 앞둔 대형눈덩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진고개식당에서 동동주, 버섯찌게와 감자전,도토리묵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반쯤 서울로 향했다. 영월, 원주를 거쳐 고속도로를 통해 노원문고에 도착했다. 고속도로가 꽉 막혀 7시간이 걸렸다. 감기가 걸렸는데도 무리하게 산행을 해서인지 다음날 집에서 앓아 누웠다. 그러나 너무 멋진 태백한 일출산행이었다. 집에 들어오자 아들은 엄마와 동생에게 멋진 일출과 재미난 자연눈썰매자랑으로 집안이 시끄럽다.

태백산 산행의 총결산. 매년 보는 태백산인데 모습이 늘 다르고, 오늘 태백산을 등산하는동안 시시각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태백산은 늘 그자리 그곳에 그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전체와 부분의 철학, 불변과 가변의 철학. 늘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이것이 자연, 태백산의 신비라고 생각한다. 태백산의 일출은 자연이 동트는 신호고 신의 축복이다.

나의 철학. "자연찬미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선을 쌓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인사를 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다다익선(多多益善)아시죠.

앞에 세가지는 자신이 없고 뒤의 한가지는 자신이 있습니다. 올들어 백두대간종주기는 처음이거든요.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는 다다익선이니까. 매일 매일해서 연말까지 계속 할께요. 잉. 그런데 작년 12월 크리스마스직전에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얘기할 때 일부러 '새해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조금 튀어보니 모두들 "벌써 새해인사받네"라며 좋아하더라구요. 그 새해하고 그 새해하고 다르다구요. 죄송합니다. 말만 같으면 되지. 되게 따지네.

이번 태백산 산행은 백두대간 종주와는 달라요. 또 와야죠. 서두에서 얘기했지만 이번 산행은 간식이고 별미에요. 밥만 먹고 살수 있나요. 국수도 먹고 고기도 먹고. 마누라만 데리고 살수 있나. 애인도 필요하지. 니 쫒겨날라. 죄송. 웃겨볼라고. 마누라만 평생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삽시다. 그게 정답이지뭐.

아참, 반성문. 사람들이 저보고 백두대간종주기 쓰면서 웬 잡소리가 그렇게 많냐고 해요.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할 거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미친놈이지 사과하나로 유럽의 중심 파리를 놀라게하나. 사과에 폭탄넣어 프랑스대통령을 테러하나.

그럼 퀴즈낼께요. 누구일까요 1)사과농가 2)사과상인 3)사과쥬스공장사장 4)사과품종개량연구원 5)엽기사과작가6)사과피부미인 7)사과폭탄테러범.사실 한국 80년대 어두었던 시절, 최고 히트품인 사과모양 최루탄이 있었거든요. 모두들 눈물줄줄 흘렸죠. 모두 틀림. 사과 정물화를 즐겨 그린 프랑스 현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사실 그의 말대로 사과하나로 놀라게 했죠. 제 고향인 대구가 한때 '사과'의 고장이었는데, 그 사과하고 다르다고요. 대구분들이 사과를 많이 먹어서 사과를 자주하나. 전두환,노태우대통령이 특히.

여러분도 한분야 몰두하다보면 이름을 떨칠 기회가 있을 것으로 확신. 저는 백두대간 종주기를 통해서 제 노가리,이빨, 구라, 썰, 이바구로 (전세계에서 가장 센 이빨인 기원전 6세기, 이솝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겠지만) 세상을 웃기고 인생을 쬐금 뒤돌아보게 할려고요. 아니먼 말고.. 그런데 제 글이 헛소리같아도 가슴에 남는게 있데요. 그러면 감사, 감사, 감사. 이글을 통해 저도 여러분도 함께 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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