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지(2002년 12월 19일)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대선자금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았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민생도 경제도 사회도 뒷전이다.
온통 정치 뿐이다.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왜 정치개혁인가. 본지는 갑신년 새해를 맞아 "정확한 진단없이는 처방도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17대 총선이 눈 앞에 닥친 시점에서 현 정치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총론
정치개혁의 길은 가까운 듯 하면서도 멀리 있다.
그리고 금방 될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
우리 정치구조는 부패와 불탈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진단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과도한 권력 집중은 수천억원대로 알려진 대선 자금 문제를 낳는다.
이기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반면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감이 작용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헌법개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문제는 다르다.
총선도 눈 앞에 두고 있는 만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의원도 갖가지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대단한 존재다.
이러니 동네마다 기를 쓰고 선거에서 이기려는 풍조를 낳을 수밖에 없다.
소지역 대결, 재력 대결, 학벌 대결 양상이 벌어지는 것도 기막힌 노릇이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한 번 국회의원은 영원한 국회의원'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 노력은 눈물겹다.
정치개혁 현장을 들여다보면 국회의원들은 한 번 더 할 수만 있다면 "반개혁이라도 좋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이래서는 안된다.
국회의원들이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될 수록 국회에 들어가려는 신인들의 도전도 거세진다.
정치가 과열이 되고 선거판이 뜨거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종 불탈법과 정치판 오염은 과열 정도와 비례한다.
이를 막아야 한다.
소선거구냐 중대선거구냐 도농복합형이냐의 선거구제 문제도 중요하다.
1등만 존재하고 2등부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선거구제 아래서의 과열상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손을 쓰기에는 늦어버렸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이라도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다.
대신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는 것도 많다.
마음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언제라도 국회의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먼저 국회의원들이 쳐 놓은 각종 법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신인들의 손발과 입은 철저히 묶고 국회의원 자신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현행 선거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정신에 위배된다.
386 세대로 총선에 도전하려는 지역의 한 신인은 "숨 쉬는 것 말고는 모두 불법"이라며 "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출마를 결심할 때부터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선거운동은 할 수 있게 하면서도 각종 불탈법은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실상 불탈법을 조장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정치개혁에는 사람이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다.
누구는 국회의원이든 신인이든 정치인의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정당구조와 정치 문화를 이야기 하고 유권자들의 의식구조 때문이라고 떠들기도 한다
결국 다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확 바꾸자"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철저한 단속.처벌이 명약
경북 지역에서 출마준비중인 한 예비 후보(44)는 "금품 선거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급속하게 둔화되는 것 같다"며 "금품을 받는 사람도 처벌하겠다는 검찰.경찰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큰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일 4월 총선에서 엄격한 법 적용으로 상당수의 당선 무효 처분이 내려진다면 그 다음 선거부터는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선거법 위반에 따른 단속을 꺼려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히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검찰과 경찰의 선거사범에 대한 엄격한 수사.처벌 방침은 선거판을 과거와 다르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7월 치러진 의성축협조합장 선거와 관련 구속자가 12명 입건자는 무려 141명이나 나왔고, 10월말의 청송 부남면 군의원 재선거와 관련 5명이 구속되고 34명이 불구속 입건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총선 출마를 준비해 온 각 후보 캠프는 긴장의 빛이 역력하다.
"걸리기만 하면 죽는다"는 의식이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는 조짐도 발견된다.
대구의 한 지역구 국회의원은 "돈 선거에 대한 검찰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며 "기존의 조직을 그대로 운영하다가는 당선되자마자 배지를 떼야 할 지경"이라고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제도도 좋고 의식의 변화도 다 좋지만 엄격한 단속과 처벌만한 즉효약은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 통계에 따르면 273명의 16대 국회의원 가운데 66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절차를 밟았고 그 중 6명이 의원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17대 총선에서는 이보다 10배의 당선 무효가 나올지도 모른다.
▨법부터 정비해야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7월 '돈은 묶고 입과 발은 푼다'며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현행 법의 많은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이 후보들이 법대로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아직도 법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대구에서 출마하려는 한 예비 후보(46)는 "선거법도 선관위의 법적용도 상식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너무 자의적이다.
선거법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선거법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아니다'는 주장이었다.
"단속된 사람이나 단속한 사람이나 모두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돈을 많이 쓴 후보나 법을 많이 위반한 후보가 단속되고 처벌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는 '재수 없는' 후보가 걸려든다는 것이다.
모두 다 불법인데.
또 경북지역에서 내로라는 중진 의원에 도전하려는 한 인사(45)는 "시작할 때는 법정선거비용만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사무실을 얻고 몇 사람을 만나다 보면 법정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것저것 다 묶어놓고 선거운동을 하라면 결국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권자도 바뀌어야
동원에 익숙하고 밥과 술을 먹을 수 있고 활동비도 받았던 기성 정당문화에서 하루 아침에 무보수 자원봉사형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돈을 넣어야만 움직이는 '공중전화형' 후진적 정당조직이 갑자기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유권자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해복구 현장이나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맹활약한 자원봉사자들이 정당이나 선거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활동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영남대 김태일(金台鎰) 교수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듯이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정당의 활성화가 가능해 질 것"이라며 "지금처럼 자발적인 참여가 없는 정당과 당원의 구조로는 정치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권자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정치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 유권자들의 생각 가운데 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중잣대다.
돈과 정치문제에 있어서 언론에 불법 자금 문제가 나오면 흥분하고 비판하면서도 야유회나 산악회 모임을 하면 정치인들의 '찬조'를 기대하는 심리가 공존한다.
어떨 때는 지역 국회의원이 정치적 거물이기를 바라면서도 친근한 이웃이기를 동시에 바라고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기준이 없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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