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 대가야-(30)5~6C 남원.장수.진안까지 영향력 미쳐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한 가야의 정치체제는 가야 후기를 대표한 가라국(加羅國) 혹은 대가야(大加耶)였다.

당시 세력권은 경남 함안과 고성 일대를 제외한 서부경남 대다수를 아우른 광범위한 지역이었고, 그 영향력은 호남 동부의 남원 장수 진안까지 미쳤던 것으로 파악된다.

경남 서남부 지역의 경우 합천을 비롯해 거창.함양.산청.의령.진주 지역에 대가야 문물이 집중 출토되고 있다.

지배층의 무덤 구조나 그곳에서 나오는 유물로 봐 대가야 문물의 확산유형은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무덤 내부구조와 출토 유물이 모두 대가야 양식인 유형(A형), 유물(주로 토기)만 대가야 양식인 유형(B형), 토기가 대가야 양식에 토착계 백제계 신라계 등이 섞여 나오는 형태(C형) 등이다.

이렇게 볼 때 산청 중촌리와 생초리, 거창 무릉리, 함양 백천리 고분군은 A형에 속한다.

대가야의 지방세력이거나 대가야에 의해 완전 병합된 정치체가 존재했던 지역이다.

이 중 산청 중촌리는 대가야가 이미 강력한 정치체를 형성한 토착집단을 무력으로 병합했고, 함양 백천리의 경우 처음부터 대가야 문물을 소유한 자들이 지배집단을 형성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또 거창 말흘리 고분군에서는 대가야 토기에 토착계 토기가( C1형), 진주 옥봉.수정봉 고분군에서는 백제계 토기가(C2형), 의령 유곡리와 경산리 고분에서는 신라후기 양식 토기가 함께 나왔다(C3형).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근거로 볼 때 대가야는 5세기 4/4분기~6세기 1/4분기 가야 후기의 주도권을 행사한 정치체로 규정할 수 있다.

당시 고령을 중심으로 합천의 서부와 거창 함양.산청 일대를 영역화한 뒤 함양을 넘어 운봉고원 일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일부는 거창을 넘어 전북 장수까지 세력을 떨쳤던 정치체였다.

그러다가 6세기 중엽이 되면 가야지역으로 팽창해 오는 백제와 신라에 대응해 때로는 친백제, 때로는 친신라 정책을 취하면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결과 진주와 의령 지역에 신라 또는 백제계 양식 토기가 섞인 고분군을 남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조영제 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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