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산 명물' 500년된 회화나무 철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의 신목(神木)이자 주민들의 애환을 간직했던 수령 500여년 된 경산의 회화나무가 찬반 논란 속에 5일 새벽 5시쯤 철거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경산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국도 25호선 도로(경안로) 한복판 삼남동과 삼북동 경계지점에 우뚝 서 있던 한 그루의 회화나무. 20여년전만 해도 이번에 베어진 나무에서 남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또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었다.

때문에 동네에서는 '부부나무'라고 불렀다.

이들 두 그루의 나무는 500여년전 옛 경산현청 관아의 뜰에 심어졌던 것. 경산현 관아가 있었던 곳을 알리는 유허비(遺墟碑) 구실도 했고, 지난날 경산읍 중심지를 상징했다.

이들 회화나무는 지역민들이 추앙하는 신목, 즉 당산목이었다.

윗대부터 이 마을에 살았다는 토박이 신영식(60)씨는 "오래 전부터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면 어김없이 남쪽 회화나무에는 삼남동 주민들이, 북쪽 나무에는 삼북동 주민들이 모여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모셨었다"고 했다.

경산시는 지난 1982년 9월 삼남동 회화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도로변에 서 있던 이 나무는 둘레만도 5.5m 이상이었고, 나무 성장도 왕성했다.

그러나 이들 나무들도 도로 확장으로 운명이 바뀌게 됐다.

지난 80년대 중반 이 도로를 왕복 4차로로 확장하면서 5일 새벽 철거된 회화나무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어야 했다.

나무는 숨을 쉬지 못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탓에 지난 1996년 말라죽었고, 보호수 지정에서도 해제됐다.

수 차례 베어질 위기에 놓였던 이 나무는 '목신(木神)이 노하여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 때문에 고비를 넘기곤 했다.

선뜻 나무를 베어내기 위해 나서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남부동 노인회 일부 노인들이 나무를 베는 데 동의해 결국 정월대보름인 5일 새벽 5시쯤 제를 올린 뒤 회화나무 '철거작전'을 3시간여 만에 끝냈다.

포클레인 한 대와 덤프트럭 2대가 동원돼 말끔히 정리했다.

시청 건설과 직원은 "나무베기 작업을 하려고 예약을 했던 포클레인 기사들이 갑자기 못하겠다고 해서 4일 밤 9시가 넘어 긴급수배를 했고 나무 철거를 끝내게 됐다"고 했다.

이기출(80) 노인회장은 "아직도 기도나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어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고, 일부 주민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경산시 정재영 건설과장은 "철거된 회화나무가 서 있던 곳은 새로 포장을 하고,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이전하는 삼남경로당에 어린 회화나무를 심고, 그 경위비를 세워 뜻을 전하겠다"고 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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