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우연찮게 한 고교 사회과 교사를 만났다.
그는 대뜸 "수업 들어갈 기분이 안 난다"고 했다.
학생들이 별 질문도 하지 않는데 공연스레 탄핵에 대해 묻지 않을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고교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탄핵과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좋은 공부거리다.
사회탐구에서 '정치'나 '법과 사회'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나 사회문화, 경제 등의 과목에서도 충분히 인용할 내용이 된다.
언어영역이나 외국어영역 시험 지문에 등장할 수도 있다.
올해 대학입시 논술이나 심층면접의 좋은 소재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학교들의 민주주의 교육 방식이다.
먼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토론식 교육'이다.
학교에 가 보면 교육의 방향이나 방법으로 '토론식 교육'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토론 교육은 민주주의의 본질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인데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은 언제든 상충될 수 있다.
이 때 풀어나가는 방식은 대화와 타협이어야 한다.
토론과 비판으로 일관하다 보면 합의를 찾기는 대단히 힘들다.
말하는 데 치중하지 듣기에는 별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한 합의는 오히려 '협잡'으로 치부된다.
몇 해 전 한 고교의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토론식 교육을 모범적으로 한다는 교사의 수업이었다.
주제는 '체벌 필요한가'였다.
학생들은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갈렸다.
수업은 아예 책상을 반분해 마주보게 한 채 진행됐다.
학생들은 한 시간 내내 평행선을 달리며 자기측의 입장을 강변했다.
교사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고 수업을 마무리했지만 합의된 내용은 없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다수결' 교육이다.
투표를 통해 다수의 의사를 묻는 것이 민주적 과정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전제돼야 할 부분이 있다.
대화를 통해 집단의 의사 결정이 도저히 이루어지지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채택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투표 이전에 합의 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끝까지 투표를 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충분히 교육돼야 한다.
양보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과정이며 표결로는 절대 소수를 진정으로 승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 단위의 일그러진 민주주의 교육은 우리의 정치 상황과 맞물릴 때 일견 당위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과 교사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대표적인 집단이 정치인들이라고 꼬집는다.
그들이 토론과 비판, 다수결에 의한 승리를 지상 명제로 여기는 데는 잘못된 학교 교육도 한 몫 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토론과 다수결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이제라도 학교는 민주주의 교육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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