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논리와 토론의 문화는 어디에

2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의 이슈는 9%에 이르는 청년실업이나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중국경제에 대응하는 국가적 전략과 같은 긴박한 문제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한참 동안 3김 정치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던 고질적인 지역감정도 이번 선거에선 어느새 낡은 이슈가 되어 어느 지역에서나 인기가 없을 것 같다.

17대 총선 후보자는 누구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문제를 놓고 저마다의 견해를 밝히면서 입방아를 찧는 바람에 인물과 정책은 뒷전이다.

나라 일을 가지고 같이 공동의 광장에서 걱정해야하는 선거마당에서 정말 난데없는 대통령탄핵으로 세상이 시끄러워 질 것을 생각하면 정치계에 국민이 지니고 있는 아쉬운 생각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작금의 소용돌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검찰의 정치자금조사로 뒷덜미가 잡힌 야당이 탄핵이라는 초강경 정치공세가 아니면 총선을 앞둔 국면 전환이 어렵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고 야당이 그렇게 나올 경우 소수인 여당 입장으로서는 감상적인 민의를 자극할 것이기 때문에 총선전략으로는 오히려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야당을 자극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여당의 판단이 적중하고 있다.

동서로 갈라졌던 야당이 신기하게도 공조하는 위업(?)을 달성하여 헌정사상 초유로 의회권력이 행정권을 견제하는 순간에 한국정치사에 유례없는 촛불시위대라는 군중권력이 나타났다.

70%라는 탄핵반대의 목소리는 법대로 결의한 대통령 탄핵을 질책하고 나섰으며 그들을 업고 여당은 신나는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에 민중이 나서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역사가 있다.

3.1운동이나 4.19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이러한 국난에 즈음한 생생한 민의의 발로라고 옹호하는 여당의 말이 어쩐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탄핵은 법치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준법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지적하고 가야할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헌재(憲裁)가 국가적 중대사안을 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중이 들고 일어나 민의라는 전가의 보도를 앞세워 압력을 행사한다면 이야말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작금의 현상은 주최 측의 변명대로 그 군중이 동원된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앞으로 결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는 노사모의 움직임도 더욱 바빠지고 그들의 성과는 증명되고도 남을 것 같다.

지금은 부정선거로 얼룩진 4.19와 같은 상황도 아니고 6.29선언을 필요로 하는 상황도 아니다.

엄연히 의회가 수행한 법에 따른 행위를 놓고 비록 다수의 여론이 다르다 하더라도 촛불시위는 자발적이라는 변명을 떠나서도 매우 감상적이고 소모적인 대응이라고 비판받을 만하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는 국가적 위기에 때로는 필요하지만 이것이 부메랑의 칼이 되어 던진 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민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에서 약하다고 외국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다.

그럴 경우 우리는 기(氣)의 문화라고 우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모두 같은 국민 끼리 대통령을 뽑아놓고 기 싸움만 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적으로 나타난 일이지만 야당내부에서도 탄핵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고 당수 뽑는 데도 힘겨워하는 것을 보면 정권교체에 포인트를 맞추어 노정권을 탄핵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노 정권 역시 탄핵당해서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탄핵 정국에서도 대통령이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싸움이 우리의 역사에는 수없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이용한 이웃이 일본이요 중국이었다.

탄핵정국에서 오히려 우직한자는 법의 칼을 빼어든 야당이고 슬기로운 자는 눈물과 동정의 촛불을 켜든 여당이다.

논리와 토론의 문화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유 명 우 호남대교수.영문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