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필자는 프랑스 문부성초청으로 파리 루브르미술관 까르젤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들은 포스터를 디자인하기 전에 붙일 곳을 미리 답사하여 주변의 건물색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엄청난 배려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의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파리의 거리가 예술적인 것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 즈음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공산국가였던 옛 유고슬로비아의 자그레브미술관전시 때도 그랬다.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새벽 줄을 서는 그들이 전시회에 올 때는 다른 관객들의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까봐서 색대비가 없는 의상을 차려입는 것이 상식이라는 말을듣고 우리의 전시문화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면서 과연 문화를 생활화하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볼 일이다.
혹시 물질문명에만 탐닉! (耽溺)하면서 정신문화에는 무관심하게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
필자는 화가라는 직업근성 때문에 시각적으로 매우 민감하여 어떤 형상이나 색상을 보고 과잉반응을 할 때가 많다.
필자는 동양화가이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구석이 있어 어떤 때는 국수주의로 몰림을 받기도 한다.
내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 있다면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어떤 것은 정말 우리 것이 세련되지 못한 점도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내심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기위해서는 거리의 건축물을 보면 된다고 한다.
그만큼 건축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60년대, 외국 나들이가 용이하지 않았을 때 얇고 세련되게 디자인한 외국성냥갑을 발견하고 그들의 높은 미술적 감각에 놀란 적이 있다.
그 후에 해외전시가 있을 때면 그 나라의 성냥갑을 찾아 문화 수준을 짐작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법이 어지간히 맞아떨어지는 데 신기함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이란 것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있겠으나 보편적 수준은 하찮은 일상의 생활용품에서도 가늠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성냥갑 하나를 놓고서도 우리의 문화와 비교하면서 '지녀야 할 점'과 '버려야 할 점'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그 결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고쳐야 할 시급한 두 가지의 당면 과제가 눈에 띄었다.
첫째가 거리의 간판이고 둘째가 산야의 묘지다.
그러나 생업과 직결된 간판과 오랜 유가사상으로부터 연유된 매장묘제는 단순한 미감이나 문화수준으로만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고민이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개혁하는 문화운동가나 위정자는 실로 위대하다고 생각해왔다.
다행히 묘제에 대해서는 최근에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지도층이 솔선하여 화장을 실천하고 각 종단에서도 이를 권장하는 움직임이 있으니 기대해 볼만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거리는 가히 간판의 홍수라고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무질서에다가 무절제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거리의 색상통제 불능현상이 얼마나 많은 정서적 황폐화를 불러오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미적 환경은 물리나 수치적 계산으로 인식 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건축가들이 아무리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여 지어놓는다 해도 얼마 지나면 건물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무차별로 두드러기 앓는 피부처럼 간판으로 도배해버림으로써 거리 환경을 망쳐놓기 일수다.
이처럼 거리의 간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더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문화관광부가 부산의 광복로에 간판을 개선하기로 하고 '아름다운 간판' 달기를 통해 이 일대를 간판명물거리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의 간판정비사업이 전문가들에 의해 거리의 환경미화에 도움이 되게 함으로써 결국은 당사자들이 종전보다 오히려 수익성을 높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기회에 간판업종을 정비, 자격화 하고 광복로 뿐만이 아니라 관과 민이 함께 합심하여 '아름다운간판'달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고대해본다.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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