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자신의 재위 28년째가 되는 갑자년(1804)에 세자에게 양위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갑자년은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이자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칠순이 되는 해이므로 이해를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정조는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으로 가려고 계획했는데, 쉰셋의 한창 나이에 양위하려는 이유는 사도세자 추숭사업 때문이었다.
사도세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영조의 유언 때문에 사도세자를 임금으로 추숭할 수 없었던 정조는 세자를 국왕으로 삼아 이를 맡기려한 것이다.
신왕에게 추숭사업을 하게 하면 정조는 영조의 유훈을 어기지 않고도 사도세자에게 효도를 다할 수 있었고, 신왕 역시 사도세자 추숭사업으로 아버지 정조에게 효도할 수 있었다.
신왕과 상왕 정조 모두가 효를 실천하면서 사도세자를 추숭하려는 것이 갑자년 구상이었다.
그의 양위계획이 사도세자 추숭사업 때문만은 아니고 화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려는 뜻이기도 했다.
양위 후에도 군권은 자신이 갖고 있으려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화성에 장용외영(壯勇外營)을 둔 것도 이 때문인데, 그러나 갑자년 4년 전에 사망하면서 이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사망 직후 공노비가 해방된 것은 사실상 그의 마지막 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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