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황사가루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바람 색깔마저 푸른 기미가 묻을 5월.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노천명의 시 '푸른 오월'의 첫 두 소절과 가운데 한 소절이다.
이 시를 읽으며 지금 막 시작된 5월에는 누군들 가슴이 벅차지 않을까. 하물며 이 땅의 우리 아이들과 어버이들이야 더할 나위 없을 게다.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하면 되고 어버이들은 어질게 물끄러미 쳐다만 보아도 절로 좋은 달. 그러다 스승이 곁에서 자비로운 눈길 한 번 준다면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란 생각은 들지 않을 테다.
그런데 그게 정녕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오늘이라는 현실. 우리들에게 왜 오늘은 그렇지만은 않을까.
이런 '오늘'이 겹겹이 쌓일 때는 하루고 여유 있으면 몇 날이고를 작정하고 용기 있게 어디론가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어디로? 여기에 맞는 답 같은 좋은 책 하나 있다.
너무 많이 알려진 책. 유명한 책. 시 '농무'로도 잘 알려진 시인 신경림의 '민요기행'이다.
두 권 짜리.
딱 20여년 전인 1983년. 처음으로 지은이는 두 해 동안 노래를 찾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냈고 네 해 만에 두 권째를 낸 것이다.
전국을 골고루 다니며 책머리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것으로 치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 시골 어느 모서리인가에 남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민요라는 장르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민요라면 예로부터 민중들 사이에 불려오던 소박한 노래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지은이는 일 속에서 또는 삶 속에서 저절로 나온 노래, 다시 말하면 농요나 노동요이기 때문에 그 민요를 따라가는 일 곧 기행은 건강하게 숨쉬는 민중적 삶의 현장을 찾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래서 민요는 폭이 넓고 노동요이기 때문에 생산적이라는 특징도 갖는다.
김매기 노래를 비롯해 모내기 노래나 상여소리, 여기다 육자배기, 방아타령, 수심가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묻혀 아직도 간간이 그 소리들이 튀어나올 때면 어깨춤이 덩실거려지는 것은 왜일까.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웬만해서는 그 현장들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게중에는 사라진 것도 있을 것이고 일부러 연희를 해야 한다거나 이미 정형화된 것도 더러 있다.
지은이가 처음 기행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뜯어고치고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건방진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들어가 그 속에 수용됨으로써 참되고 값진 우리의 삶과 문화가 새롭게 빚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깨달을 여유가 있었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동안의 세상 변화에 그 여유가 엄청 무너졌을 것으로 보여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떠나 보아야 한다.
아직도 보리밭 이랑 사이로 푸른 보리물결이 일렁이면 혹 어디선가 우리의 노랫가락이 흘러 찌든 일상의 현대인들을 감싸줄지 말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웬만하면 갖은 축제들로 사람들을 모아 떠들기는 하는데 정작 듣고 싶은 우리의 소리는 찾기가 힘들다.
가령 찾았다 하더라도 소음에 가까운 다른 소리들로 범벅이 되어 자칫 우리의 소리까지 소음처럼 들리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지은이의 발길은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사람 북적거리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남한강 유역 담뱃골부터 시작되는 여정은 낙동강 유역뿐 아니라 지리산 자락을 훑고 진도 보길도까지 이어진다.
그뿐이랴. 추풍령 넘나드는 노래도 살피고 동해안 풍물과 안동지방은 물론 덕유산 둘레의 사람살이도 살핀다.
그러다가 남도 황톳길, 그리고 그 넘어 씻김굿의 현장을 둘러서는 남한강의 뱃길 천리로 두 권째를 마감한다.
어떻게 보면 민요기행이라기보다 민중문화 또는 민속기행이라 할 만큼 책 속에는 오늘을 살고 있는 민중의 삶의 모습이 더 절실히 표현될 때가 많다.
그러면 어떤가. 흔히 일컬어지는 기층문화니 민중문화니 하는 것이 모두 실은 우리들이 밥술 뜬 뒤 이루어지는 삶의 연속에서 찾아 지는 것들이 아닌가. 그래도 전체 중심의 무게는 우리들이 부분 혹은 절반 정도만 흥얼거려도 주위의 이목을 받으면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의 민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민요의 맛을 알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을 갖춘 책이다.
"어어휘…. 불쌍하다 우리 농군 오뉴월 무더위에 피땀 흘려 일만 하나 어어휘 이후후…초로 같은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못 올 길을 사시 장차 일만 하나 어어휘 이후후…" 영주지방에서 채록된 '초군노래'가 오늘따라 유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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