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냉장고.컴퓨터부터 살까 농산물저장고를 지을까

"냉장고부터 살까, 농산물저온저장고를 지을까 아니면 손자를 위한 컴퓨터부터 장만할까".

디지털시대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세상인 군위군 고로면 학성2리 안용하 마을이 요즘 시끌벅적하다.

주민들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전기공급이 내년 이맘때 쯤이면 이뤄진다는 소식에 모두가 들뜬 기분이다.

현재 5가구 7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에 아직까지 전기가 없어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01년 산업자원부가 농어촌전화촉진법을 개정, 5호 이상 벽지마을에 정부지원금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지만 그동안 이 마을에는 법적 요건에 1가구 부족한 4호만 살아 산자부의 전기공급 혜택을 받지 못했다.

300년 뿌리의 이 마을도 지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15가구 50여명의 주민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겹겹의 꼬부랑 산길을 넘어야 하는 교통불편에다 전기마저 없어 해마다 하나 둘 집과 농경지를 버리고 도시로 떠나버렸다.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 올 수 있게 된 것은 올해 초 나갑용(60)씨가 대구에서 이 곳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나씨의 전입은 농어촌전화촉진법에 의한 전기공급 지원 대상인 5호를 충족시켰고, 군은 재빨리 산자부에 '농어촌전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해줄 것을 신청했다.

지난 26일 현지 실태조사를 벌인 산자부.한전 합동조사반은 "늦어도 내년 이맘때까지 전기를 공급하겠다"며 "그동안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전기가 공급된다는 말에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는 표정이다.

나갑용(60)씨는 "지난 94년 매입한 농지 4천여평에 감.대추.호두.배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올해부터 본격 수확할 예정"이라며 "전기가 들어오면 당장 농산물 보관창고부터 지어야 겠다"고 했다.

평생 안방에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 실컷 쐬어 보는게 소원이었던 이상후(68)씨는 "전기가 들어오면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녀석을 위해 컴퓨터 한 대를 장만해야겠다"고 했고 부인 박영난(65)씨는 "가장 시급한 것은 냉장고"라며 맞장구를 쳤다.

조기호(43)씨는 "전기가 없어 고추를 말리는 건조기를 돌릴 수도 없고, 호박을 저장할 저온 저장고도 갖출 수 없어 갖은 고생해 거둔 농산물을 제값 한번 받지 못하고 팔 때 정말 속상했다"며 "곧 전기가 들어온다니 그동안 참고 견딘 보람이 있다"고 했다.

김정대(49)씨와 김태순(74)씨는 "이왕 전기를 넣어주려면 빨리 넣어주지 또 지긋지긋한 엄동설한을 한해 더 넘겨야 하나"며 "올 여름에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수박으로 화채 한그릇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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